백합/오늘의 강론 4569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 1열왕 21,1-16; 마태 5,38-42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2022.6.13. 한처음에는 모든 땅이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물질생산력도 증가하면서 국가가 성립하여 국가의 권력으로 법을 제정하게 되었는데, 이 법률에서 토지로 인한 분쟁을 예방하고 제한하며 조정하고자 토지소유권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또한 오늘 독서의 배경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에게 토지가 무상으로 분배되면서 토지의 개인소유권 개념이 인정되지 않는 희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희년법의 권위는 토지는 하느님의 소유라는 창조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면 이렛날에 일을 쉬어야 하는 안식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오늘의 묵상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태 복수법’은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고대 근동의 옛 법전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도 언급된 (탈출 21,24; 레위 24,20; 신명 19,21 참조)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구약의 가르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연하다고, 마땅히 정의롭다고 생각하던 기존의 가치를 넘어서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시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과거의 가치관과 편견, 세상의 소리를 초월하여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5,38-42: 나는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오늘 복음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윤리를 말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법은 기원전 170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동태 복수법(lex taleonis)이다. 이것이 구약성경 윤리의 일부분이 되었다. 탈출 21,22-25에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자와 부딪쳤을 경우, 그 여자가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재판을 통해서 벌금을 치른다. 그러나 다른 해가 뒤따르게 되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우리는 지난주일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며 부활시기를 마쳤는데, 이제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신 모든 업적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업적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미하기 위함이다. 즉 아버지께서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해 이루신 구원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동시에 삼위일체의 신비의 영광에 대해 흠숭의 예를 바쳐드리는 것이다. 복음: 요한 16,12-15: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살아 계신 실체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구원적 업적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삼위의 신비는 우리가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결코 삼위의..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도, 바르나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도, 바르나바 사도 11,21-13,3; 마태 10,7-13 /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22.6.11.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바르나바 사도는 초대교회 역사에서 예루살렘 시대와 소아시아 시대를 이어주는 인물이고, 열두 사도단과 바오로 사도를 이어준 인물입니다. 그는 해외 디아스포라에 살던 유다인으로서 키프로스 태생이었는데, 그가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하러 왔다가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자들이 보여주는 공동생활에 감명을 받아서 신자가 되었고(사도 4,36-37), 사도단의 신뢰를 받아서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파견되어 사목 책임도 맡았습니다(사도 11,22).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스테파노로 인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신자들이 개척한 공동체로서 스테파노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베드..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성 바르나바는 비록 12 사도의 명단에는 들지 않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훌륭한 사람”(11,24)으로 사도로 인정하였다. 유다교에서 개종한 본명이 요셉이었던(사도 4,26 참조) 그는 자기 재산을 모두 사도들에게 봉헌함으로써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오로 사도가 개종한 후 초대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바오로를 소개하였고, 그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바오로의 선교여행에도 함께 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많은 활약상을 보였다. 바르나바 사도는 키프로스 교회의 창설자로 알려져 있으며, 61년경에 키프로스 섬의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신 분이다. 복음: 마태 1..

연중 10주 금요일/ 마태 5,27-32 <죄의 뿌리인 마음의 살핌과 존엄한 여성♣>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10주 금요일/ 마태 5,27-32 <죄의 뿌리인 마음의 살핌과 존엄한 여성♣>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죄의 뿌리인 마음의 살핌과 존엄한 여성♣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 연중 10주 금요일/ 마태 5,27-32 약성경은 간음죄를 금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탐욕(탈출 20,17; 집회 41,23)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5,28)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교의 미쉬나에서도 “손으로, 발로, 생각으로 간음죄를 범하지 말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좀더 근본적으로 음욕을 품고 바라보..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5,27-32: 악의 유혹을 끊어 버려라. 분노는 살인의 어미이듯이, 욕정은 불륜의 어미이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28절) 간음을 저질렀다고 하신다. 행위보다 의지를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간음이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유 없이 이웃에게 성내는 일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여자를 음욕을 품고 바라보는 것도 그것을 행동으로만 옮기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의지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것을 큰 죄로 여긴다. 그것은 사람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큰 죄이기 때문이다. 그 욕구를 잘라버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죄를 짓게 하는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5,20-26: 살인하지 말라 예수님의 말씀은 살인뿐 아니라 이웃에게 분노하는 것까지 금하신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하여 적대시하거나 분노를 품어서도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분노는 살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해하는 것은 분노에서 생긴다. 이유 없이 성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생각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이유 없이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22절) 하셨다. 자기 형제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혀를 잘 길들여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 1열왕 18,20-39; 마태 5,17-19 /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2022.6.8.; 이기우 신부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수많은 이중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기도 하고 앞뒤의 순서나 원인과 결과로 서로 연결되기도 하며, 부분과 전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합 임금 시대에 바알신의 예언자들과 대결하던 상황에서 북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예언자 엘리야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바알신을 누르고 하느님의 신성을 드러내자 놀라서 엎드려 연거푸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1열왕 18,39). 그런가 하면 하느님 나라의 참행복을 선포하심으로써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이를 잘 지키라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율법과 예언서에서 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