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

수성구 2022. 6. 8. 04:40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 

1열왕 18,20-39; 마태 5,17-19 /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2022.6.8.; 이기우 신부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수많은 이중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기도 하고 앞뒤의 순서나 원인과 결과로 서로 연결되기도 하며, 부분과 전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합 임금 시대에 바알신의 예언자들과 대결하던 상황에서 북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예언자 엘리야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바알신을 누르고 하느님의 신성을 드러내자 놀라서 엎드려 연거푸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1열왕 18,39). 

 

  그런가 하면 하느님 나라의 참행복을 선포하심으로써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이를 잘 지키라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율법과 예언서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마태 5,18)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라는 절대적으로 강경한 표현을 사용하심으로써 당신의 확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압도적으로 열세였던 상황에 놓인 엘리야가 방어적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매우 공세적인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참 행복을 가져다줄 사랑의 계명을 스스로 지키고 또 사람들을 가르치는 이는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 즉 주인공이 됩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을 일상의 삶으로 행하는 경지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가장 잘 지키신 분이 성모 마리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큰 사람으로서 주인공이 되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삼아야 할 목표를 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삶의 거짓과 허망함을 폭로한 엘리야의 방어적 행동이나, 하느님을 올바로 섬긴 결과로 참 행복을 누리는 계명을 지키라고 당부하신 예수님의 공세적 가르침이 모두 성모 마리아의 삶에서 종합적으로 어우러집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리아의 삶은, 방어적으로 보면 처녀 시절에는 동정의 몸으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전갈에 대해 믿음으로 순종하심으로써 그 옛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를 능가하셨고, 공세적으로 보더라도 초대교회 시절에는 사도들과 신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룩할 수 있도록 성령 강림의 중심을 잡고 계심으로써 부활 신앙과 공동생활 양식에서 나오는 참된 행복이 보편화되게 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묵묵히 걸으셨는데, 이 삶에서 풍기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의 향기가 여러 여인들에게도 전해져서 열두 제자단에 버금가는 여인 제자단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여인 제자단이 함께 했던 덕분에 장정 열 세 사람이 복음선포하는 동안 필요한 뒷바라지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상에 희생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선행은 없으며, 참된 행복이라는 기운이 없이는 무턱대고 희생을 감내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부활 신앙과 공동생활 양식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려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일상적으로 돈과 권력, 스펙과 지위 등 현대판 우상들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현혹하는 환상들과 마주칩니다. 그런데 이 우상이 제공하는 세속적인 행복은 치열한 생존경쟁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1%의 승자가 나머지 99%의 패자들에게 안기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합니다. 또 그 승자마저도 치열한 경쟁과정이 주는 압박에서 쉬이 벗어날 수 없으며 사실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길에서는 승자나 패자들 모두 신기루 같은 헛된 행복의 꿈만 꿀 수 있을 뿐, 그들은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는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참된 행복을 주시는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된 행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한 점, 한 획도 어김없이 관철되고야 마는 진리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에 감사하려는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과 여기서 우러나오는 기운으로 이웃에게 시원스레 베푸는 희생의 고귀한 가치입니다. 감사와 희생으로 다가오는 참된 행복의 진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스스로 지키면서 사람들에게도 전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들이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에서 비추이는 빛을 받아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