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부활 제7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7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6,29-33: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하였다.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30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께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분은 제자들이 묻기도 전에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님은 사람의 생각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30절) 한 것이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31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심으로써 제자들이 나약한 어린애라고 하..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청소년 주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청소년 주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모든 사명을 완수하시고 다시 하느님 품으로 가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그런데 ‘승천’, 곧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리적으로 이 땅을 떠나 저 높은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말일까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 저 먼 곳으로 가셨을까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라고 말씀하셨으니, 떠나시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머물며 함께 사셔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주님께서 오르셨다는 그 ‘하늘’과 그분의 ‘승천’은 우리를 떠나 저 멀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욱더 하나가 되시..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청소년 주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청소년 주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예수 승천 대축일: 다해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이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지형학적 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심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영광에 우리도 성령의 능력으로 이미 가까이 가 있음(에페 3,12; 2,18)을 믿는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신다면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하늘이 더 가까워지게 한 역사(役事)이다.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모든 시대의 신앙인들을 땅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어 교회라는 새 이스라엘 왕국(6절 참조)을 세워주실 성령의 때의 시작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아폴로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아폴로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사도 18,23-28; 요한 16,23-28 / 2022.5.28.;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의 말씀에서 묵상해야 할 화두는 복음에서는 기도요, 독서에서는 지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 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네 신앙 현실의 경험과 다소 아니 어쩌면 한참 동떨어집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 오고 있지만 기도하는 것마다 들어지는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의 기도가 그분의 ..

부활 제6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16,23-28: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23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받으신 후에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와 청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고 아버지께서는 그 청을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제자들의 기쁨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바로 구원과 관계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24절) 하셨..

부활 제6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 16,20-23: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가는 것은 제자들에게 슬픔이 되겠지만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리라는 것을 산모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여자가 해산할 때 진통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다는 말씀이다. 새 생명을 탄생시킨 후에는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그 진통의 고통을 잊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하신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을 잃는다는 고통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는 고통이나 두려움은 모두 잊게 되고 다시 만난 기쁨만 남게 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 고통은 기쁨을 낳는 고통이..

바오로의 동지들과 이벽의 동지들

바오로의 동지들과 이벽의 동지들 사도 18,1-8; 요한 16,16-20 / 2022.5.26.;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생애 마지막 때에 제자들에게 고별사를 남기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내실 성령에 대해 예고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심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룩하실 작정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이 창조될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 인간이요 이들이 맺는 새로운 인간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이 말하는 초점은 성령으로 맺어지는 사도적 인간관계입니다. 아퀼라와 프리스퀼라 부부는 원래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흑해 연안의 폰토스 출신으로서 천막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로마로 갔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모든 유다인을 추방하는 바람에 코린토에 오게 되었습..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복음: 요한 16,16-20: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16절)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셨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십자가에서 내려진 다음 무덤에 모셔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그들은 다시 그분을 보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시어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17절) 하셨다.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다. 그분의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돌아오시리라는 것, 당신이 그들..

알지 못하는 신에게

알지 못하는 신에게 사도 17,15-18,1; 요한 16,12-15 / 2022.5.25.;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사도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광장에서 직접 아테네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이제까지는 디아스포라의 유다인 회당을 매개로 복음을 전해온 그가 다신교 풍습에 젖어 있던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선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무수한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고, 하도 섬기는 신이 많다 보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 제단을 세워 놓고 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오로는 그들이 섬기던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현세에서 뛰어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현세적 상황에서도 인간적..

부활 제6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16,12-15: 진리의 성령이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13절)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참다운 진리가 무엇인지,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깨우쳐 주시리라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즉, 사랑 안에서 더 충만한 지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 안에서 살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모든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13절) 성령께서는 스스로 오시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오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