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연중 10주 수요일( 마태 5,17-19)<사랑과 투신을 통한 율법의 완성♣>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10주 수요일( 마태 5,17-19)<사랑과 투신을 통한 율법의 완성♣>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연중 10주 수요일( 마태 5,17-19)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법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의로운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완성하심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운 의로움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5,17) 예수님께서는 율법 그 자체의 구속력을 제거해버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예언서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올바르게 전달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5,17-19: 새로운 정신과 옛 율법 율법과 예언서를 만드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를 통하여 이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라고 하심으로써 모두 이루셨다. 그리고 파스카 신비로 율법을 완성하셨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이 모든 것들은 아무리 작은 계명이라도 잘 보존하며 열심히 성실하게 가르쳐 하늘나라의 영광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작은 계명도 하늘나라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말만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가르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르치려는 것을 행하여야 한다. “모..

꽃자리 -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꽃자리 -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2.6.7.연중 제10주간 화요일 1열왕17,7-16 마태5,13-16 꽃자리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은, 정체는, 존재이유는,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한 답을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예외없이, 차별없이 누구나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소금이 아니라 세상속의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빛이 아니라 세상속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소금이라면, 세상을 떠난 빛이라면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각자 고유의 삶의 자리입니다. 내 삶의 자리가 바로 세상의 중..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5,13-16: 세상의 소금과 빛 소금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음식을 맛나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도 방부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자신이 지닌 참맛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소금은 사도들이 전해준 말씀으로 가득 찬, 참된 지혜로 가득한 마음을 의미한다. 그 소금이 우리 마음에 뿌려지면 지혜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 잡는다. 이런 마음을 소금에 비유하는 것은 소금의 좋은 맛과 신선함 때문이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을 썩지 않게 맛나게도 못하는 것처럼, 사도들의 가르침이 없으면, 우리는 건강하지 못하고 활기가 없으며 하느님 보시기에도 아름답지 못하다. “소금이 제맛을 잃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2.6.6.월요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창세3,9-15.20 요한19,25-34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의 유래가 각별한 느낌을 줍니다. 이 기념일은 2018년 3월13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회의 어머니”(Ecclesia Mater) 교령이 발표된 이후 올해 4번째 지내게 됩니다. 이 기념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따라, “사목자, 수도자, 신자들 안에 교회의 모성애와 진정한 마리아 신심의 성장을 증진하기 위하여”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 바로 오늘 지내게 됩니다. 교령이 발표되던 해인 2018년, 기념일 교황님 강론을 읽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음: 요한 19,25-34: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공경하는 날이다. 마리아께서는 성령강림 때에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으며, 늘 교회와 함께하셨다.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며 2018년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새로운 자녀들을 잉태하는 신비를 담고 있다. 우선은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라고 기도하시면서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아들의 영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아들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에게..

오소서 성령님! 성령을 받아라! - 성령이 희망이자 답이다 - 성령 강림 대축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오소서 성령님! 성령을 받아라! - 성령이 희망이자 답이다 - 성령 강림 대축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2.6.5.주일 성령 강림 대축일 낮미사 사도2,1-11 1코린12,3ㄷ-7.12-13 요한20,19-23 오소서 성령님! 성령을 받아라! -성령이 희망이자 답이다- 6월5일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자 환경의 날입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 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는 환경의 날을 맞아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주제의 담화문을 통해, “지구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답은 우리 인간의 자발적이자 적극적인 한결같은 응답의 노력이자 실천이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방금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

성령강림 대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령강림 대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령강림 대축일: 다해 복음: 요한 20,19-23: 성령을 받아라.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이 시간에는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다양한 지체가 되게 하는 은총의 선물로서의 성령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의 선물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사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선물이 부활의 신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성령의 선물은 부활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은 부활에서 시작하여 부활이 활짝 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성령은 부활의 선물일 뿐 아니라,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다. 이 선물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성령 강림과 사도들의 어머니 마리아

성령 강림과 사도들의 어머니 마리아 묵시 21,1-5; 루카 2,27-35 / 6월 성모신심 미사; 2022.6.4.; 이기우 신부 6월을 시작하며 예수 성심 성월을 맞이한 우리는 오늘 성령 강림을 하루 앞두고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사도들 위에 세우신 교회는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여 있던 사도들과 신자들이 성령을 받음으로써 탄생하여 역사를 순례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의 시작 때에 마리아께서 계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시작의 순간을 이렇게 전합니다: “사도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이 말씀 안에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세 가지 표지, 즉 예수 성심과 성령 강림과 성모 신심의 은..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7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21,20-25: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 예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나를 따라라”(19절) 하셨을 때 베드로가 돌아다보았더니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21절) 하고 물었을 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22절) 라고 하신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을 본받으라는 뜻으로 “나를 따라라.”라고 하신다. 행동적인 신앙은 주님의 수난의 본을 보고 완전하게 배웠으니 주님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막 시작된 관상은 주님께서 오셨을 때 완전하게 될 것이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