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부활 6주 화요일/ 요한 16,5-11 <떠나시는 예수님, 오시는 성령♣>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부활 6주 화요일/ 요한 16,5-11 <떠나시는 예수님, 오시는 성령♣>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떠나시는 예수님, 오시는 성령♣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오지 않으신다."(요한 16,7) 부활 6주 화요일/ 요한 16,5-11 일찍이 니체는 항상적인 세계의 상실과 더불어 최고의 가치를 상실한 허무적 상황을 가리켜 '신은 죽었다'(Gott ist todt.)라고 표현하였다. 현대인은 스스로가 주인인양 처신할 뿐 아니라 ‘주님의 영’(靈)이 아닌 ‘육(肉)의 영’의 영을 따라 정신없이 살아감으로서 하느님을 죽이고, 하느님과 예수님의 부재 상황을 자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별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은 슬픔에 잠겨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는 이가 없었다. 제자..

부활 제6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6,5-11: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오시리라.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5절) 제자들은 이 말씀 때문에 슬픔에 잠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7절) 말씀하신다. 그분이 떠나시는 것은 당신이 영광 속에 계시며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도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온갖 다양한 선물을 주신다. 그리스도를 이제는 성령 안에서 뵙고, 제자들이 눈으로 그분을 뵐 때와 같이 그분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리디아와 강완숙 골롬바

리디아와 강완숙 골롬바 사도 16,11-15; 요한 15,26-16,4 / 2022.5.23.;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이기우 신부 그리스도인들은 새 인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초대받은 사람들로서 육신과 세속의 차원을 넘어서는 삶을 통해서 악의 세력을 소멸시키고 성령의 사기지은에 따라 세상에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새로운 인류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서 나타난 성령의 사기지은을 고루 입었으므로 성령의 강림으로 부활 신앙을 체험하고 공동생활 양식을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의 신기원을 실현시켰습니다. 여기서 죄와 악의 공격을 받아도 영향을 받지 않고 여전히 선의 기운이 상하지 않는 은총은 새로운 존재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류투성이의 현실 속에서..

부활 제6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5,26-16,4: 진리의 성령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을 보호자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들은 참 기쁨이 있다. 이 성령을 주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15,26)이라고 하신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라고 아들은 말씀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이 아들의 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우리는 아들 안에서 하느..

부활제6주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제6주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그분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산다면,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와서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상의 존재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께서 이 지상에 현존하시는 하나의 장소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

부활 제6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6주일: 다해 오늘도 지난 주일의 천상 예루살렘의 이야기(묵시 21,1-5)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천상 예루살렘은 구원이 하느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원은 구약과 신약 전체의 백성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천상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것은 ‘세속도시’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 성스러움과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깊이 들어와 계시어 그들과 하나를 이루고 계심을 뜻한다. 이렇게 하느님과 인간들이 일치를 이루는 것은 돌아가시고 ..

부활 5주 토요일/요한 15,18-21 <신앙인의 소속감과 정체감 ♣>신부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부활 5주 토요일/요한 15,18-21 <신앙인의 소속감과 정체감 ♣>신부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5,19) 부활 5주 토요일/요한 15,18-21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삶의 방향을 바르게 해주는 것 가운데 소속감과 정체감이 있다. 이 둘은 실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 내가 어디에 속에 있는가 하는 소속감이 분명할 때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감도 더 명확해진다. 소속감과 정체감이 확고해질수록 자존감이 커가고 영성생활도 성숙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18-27절의 내용은 제자들이 예수님 때문에 겪게 될 세상의 ‘증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부분은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머물면서 그분의 모범대..

부활 제5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15,18-21: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18절)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시려고 고난을 겪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하느님의 자녀로 계속 남아 있게 해 줄 고난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의 미움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고 하지만, 주님께서 먼저 세상의 미움을 견디셨다. 우리가 이 세상의 비난을 받고 귀양을 가고 고문을 받지만, 주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일을 겪으셨다. 저주받은 세상은 박해하고 하느님과 화해한 세상, 즉 교회는 박해를 당한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 사도 16,1-10; 요한 15,18-21 / 2022.5.21.;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초대교회 시절에 바오로 일행은 소아시아에서 복음 선포에 진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서해안의 트로아스로 내려가서 유럽으로 건너가라는 환시를 받고 그리스의 마케도니아로 넘어 갔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서향하게 된 역사적 전환이 이렇게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서진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신 성령께서는 제1천년기에는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우게 하셨고, 제2천년기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게 하셨는데, 이 제3천년기에는 아시아에 사랑의 문명을 세..

부활 제5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 15,12-17: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2절) 이것이 당신의 계명이라고 하신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모든 계명도 지키게 될 것이다. 이 사랑의 계명 안에 모든 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라는 말씀은 바로 ‘서로를 위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더 서로를 위하여 죽어야 하겠는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