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0,1-10: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1절) 목자가 드나드는 ‘문’은 바로 ‘성경’을 의미한다. 성경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데려다주고 우리에게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를 그분의 양 떼로 만들어 주며 우리를 이리떼로부터 막아준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시니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문이시고, 우리를 보살피는 목자이시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2절) 목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그리스도의 겸손을 잘 아는 사람이다. 양들의 목자는..

[부활 제4주일] 부르심에 관하여

[부활 제4주일] 부르심에 관하여 부르심에 관하여 사도 11,1-18; 묵시 7,9-17; 요한 10,27-30 2022.5.8.; 부활 제4주일; 이기우 신부 1. 오늘 맞이하는 부활 제4주일은 ‘착한 목자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날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묵상하면서 그 부르심에 응답한 성소자들을 기억하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에 응답하도록 기도합니다. 머지않아 가시화될 북방 선교도 준비해야 하고 하느님의 가치를 위해 헌신할 일꾼도 길러야 하는데, 그러자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고 성소자를 배출할 가정들이 나와야 합니다. 2. 오늘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수행한 선교여행의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성소자로서 늦깎이였던 바오로는 예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자기 계시로 가득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6,35 참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참포도나무이다.”(15,1 참조) 등. 이 수많은 자기 계시 가운데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나는 착한 목자다.”(10,11)라는 선언에 뒤이어 나오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로 계시하시며 당신과 목자인 그분을 따르는 양들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와 나눈 대화에서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 영원한 생명을 얻..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일: 다해 오늘은 성소 주일이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 부르심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진정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미사가 되도록 하자.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기리는 착한 목자의 주일을 맞아 또한 교회의 목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하는 날이다. 복음: 요한 10,27-30: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신지를 입증해 보여 달라고 한다(요한 10,24).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을 탓하시면서 그들이 당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10,25-26 참조). 이 유다인들의 요구는 진실하지 못하다. 예수님의 ..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9,31-42; 요한 6,60-69 / 2022.5.7.;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6장의 결론으로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 사건과 이로 말미암은 군중의 반응과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무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루살렘이 위치한 유다 지방은 물론 갈릴래아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 등 당시 이스라엘의 전 지역에서 늘어나 퍼져나가는 선교적 상황을 전해줍니다. 그 무렵에 사도 베드로가 중풍에 걸려 누워 있던 애네아스를 일으켜 세우고, 병 들어 죽은 타비타를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시는 표징을 증언하고 있는 요한복음서에서 제6장과 제7장은 생..

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6,60ㄴ-68: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60절) 하며, 결국 많은 제자가 예수님을 떠나 물러갔고 더는 따라다니지 않았다(66절). 여기서 예수께서는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63절)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투덜거리는 것을 아시고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구원을 주는 것은 성령이시라고 “영은 생명을 준다.” 하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영은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하신 말..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다 사도 9,1-20; 요한 6,52-59 / 2022.5.6.;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는 박해자였던 사울이 선교사로 인생의 방향을 180도로 바꾸게 된 극적인 사건을 전해줍니다. 그때 그는 스테파노의 치명 이후 유다교의 박해를 피해 북쪽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박해자 사울의 살기 어린 발길을 세우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비추신 번개 빛이었습니다. 뒤이어 벼락치는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이 소리에 놀란 사울이 누구시냐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5) 하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가 거짓 예언자로 생각했던 예수는 분명히 십..

부활 제3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 6,52-59: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유다인들은 불쾌하게 여기고 멀리하려 한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당신이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빵이라는 사실을 알아듣지 못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53절)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함께 모여, 일치된 마음으로 한 덩이의 빵을 나눈다. 이 빵은 불사의 약이다. 이 빵은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예수님께서 “받..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사도 8,26-40; 요한 6,44-51 / 2022.5.5.;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사기지은을 사도들에게만 발휘하신 것이 아니라 부제 필리포스에게도 발휘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나, 남쪽 에티오피아의 고관에게나 그리고 서쪽 해안지방의 아스돗과 카이사리아에게도 종횡무진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부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그가 한 곳에서 복음 선포 임무를 마치면 그를 잡아채듯 데려가셨습니다. 필리포스가 사마리아에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 나서, 악령을 몰아내고 병자들을 고쳐 주었습니다(사도 8,6-8).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천사를 시켜 그에..

부활 제3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6,44-51: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가는 것도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그리스도께 갈 수 없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선물 덕분에 그리스도께로 왔다. 그러나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 가는 길에 있는 존재들이다. 이 하느님께 이끌리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 이끌린 것이다. 이러한 갈망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방법은 강요가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심으로써 이끄신다. 이 이끄심은 하느님의 일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