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5. 7. 01:44

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6,60ㄴ-68: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60절) 하며, 결국 많은 제자가 예수님을 떠나 물러갔고 더는 따라다니지 않았다(66절). 여기서 예수께서는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63절)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투덜거리는 것을 아시고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구원을 주는 것은 성령이시라고 “영은 생명을 준다.” 하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영은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며, 그분의 가르침이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것이 당신 살이라고 하셨다.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 육은 그들이 이해했던 살점이었기 때문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며, 그 육도 영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 영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66절) 변덕스러운 쭉정이 같은 믿음은 유혹이라는 돌풍이 불 때마다 날아가 버리고 만다. 주님의 말씀을 거북하게 느낀 제자 일부는 그분께 등을 돌렸다. 그러나 많은 제자는 그 때문에 그분을 따르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쉽게 신앙을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67절) 이 말씀은 그들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신다. 주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마태 16,24)이라 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시기 위해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신 것이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68절) 이 말은 ‘어느 누가 당신처럼 저희를 가르치겠습니까?’ 또는 ‘저희가 누구에게 가서 더 훌륭한 것을 발견하겠습니까?’라는 뜻이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68절) 이 말은 떠나간 제자들처럼 ‘듣기 거북한’ 말씀이 아니라, 끝없는 생명으로 데려다줄 말씀이 있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발아래 앉아 그분을 유일한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69절) 우리는 알기 위해 믿는다. 먼저 알고 난 다음 믿으려 했다면 우리는 결코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알게 되었는가?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그분은 영원한 생명이시며 당신 살과 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신 분이다.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남겨주신 성체를 열심히 영하여야 한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심장이며, 우리 인간을 당신으로 변화시켜주는 성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