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부활 제5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일: 다해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그리스도께서 이끄시어 완성하시는 그 ‘새로움’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여, 궁극적인 해방을 기다리며 신음하는(참조: 로마 8,19) 온 세상을 포용하고 있다. 묵시록은 악의 완전한 패배를 묘사하고 있다.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 여기서 새로움은 사물의 ‘새로움’이 아니라 인간의 새로움이다. 묵시록은 이 새로움을 천상 예루살렘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마티아 사도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복음: 요한 15,9-17: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고 하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0절) 우리가 사랑의 관계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없이는 은총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그분과 튼튼히 연결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2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사도 13,26-33; 요한 14,1-6 / 2022.5.13.;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창조 신앙은 부활 신앙으로 구체화됩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창조 신앙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통하여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 현실에서 그분은 당신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이요 추구해야 할 진리요 누려야 할 생명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고 그분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믿으며 그분이 열어젖히신 생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수 있음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도들은 교회를 세웠고 곳곳에 널리 퍼뜨렸는데, 이 교회는 새 인간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그리..

부활 제4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금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 14,1-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절)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께서 돌아가신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혼란스러워하자 그들을 위로하신다. 이 말씀은 아들에 대한 믿음과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하나로 만들며, 그분의 하느님이심을 아버지의 하느님이심과 하나로 만든다. 즉 그분도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2절) 여기서 아버지의 집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며, 아드님께서 아버지께 바칠 하느님의 나라이기도 하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13,16-20: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16절)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조용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8) 하셨다. 주님은 아버지의 선과 사랑을 지니신 분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시면서도 우리 모든 죄인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부를 수 있도록 당신의 영을 주시어 당신과 같이 될 수 있게 해 주셨다. 우리는 ‘아들의 영’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17절) 이..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 사도 12,24-13,5; 요한 12,44-50 / 2022.5.11.;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4-45).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이유는, 그분이 유다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요한 12,37). 이 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해 계셨는데, 그 바로 직전에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타니아에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기적까지 베푸셨던 터였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인들은 혁명당원들처럼 그분을 내세워 민중 봉기를 일으킬 음모를 ..

부활 제4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12,44-50: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44절) 아들을 모르는 사람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아들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그분은 빛으로서 세상에 오셨으며 당신을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아들로서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분이시고 당신을 믿는 것이 아버지를 믿는 것이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45절). 이 말씀은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분이심을 의미한다. 흐르는 물은 샘물의 본질과 같다. 우리는 말씀을 바라봄으로써 아버지를 볼 수 있으며, 아들의 말씀을..

부활 제4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0,22-30: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성전 봉헌 축제 기간 중 예수께서는 솔로몬 주랑에서 당신에게 빌미를 잡으려 주님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하라고 하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들로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26절)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27절) 우리가 참으로 양 떼라면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분의 양이라면 그분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따르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알아듣는다.’라는 말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른다는 뜻이다. 하느님을 듣는 사람은 그분께서..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사도 11,1-18; 요한 10,1-10 / 2022.5.9.;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과 아나빔들이 그 복음을 알아듣는 매카니즘, 즉 메시지의 선포와 수용의 이 관계를 목자와 양 떼에 비유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가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때 의미로가 아니라 음색으로 알아듣기 때문에, 낯선 음색으로 자신들을 부르는 거짓 목자의 목소리에는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이를 피해 달아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예수님의 이 비유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알아듣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역사적 시행착오를 들려주었습니다. 예수님도 혈통상으로 유다인이셨고 제자들도 유다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유다인..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오늘의 묵상 “나는 양들의 문이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문’으로 계시하십니다. 양들이 드나드는 문! 바로 이 문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양들이 이 안전하고 확실한 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도둑과 강도가 바로 그들입니다. 양들의 문이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양들을 유혹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들의 문이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그리고 도둑과 강도, 이렇게 오늘 복음은 양들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부류의 등장인물로 구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또 다른 인물이 복음에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