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수성구 2022. 5. 13. 05:30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사도 13,26-33; 요한 14,1-6 / 2022.5.13.;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창조 신앙은 부활 신앙으로 구체화됩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창조 신앙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통하여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 현실에서 그분은 당신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이요 추구해야 할 진리요 누려야 할 생명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고 그분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믿으며 그분이 열어젖히신 생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수 있음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도들은 교회를 세웠고 곳곳에 널리 퍼뜨렸는데, 이 교회는 새 인간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설계를 지니고 세워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새 인간이며, 개별 실존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실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설계도는 부활 신앙의 실제적 표현입니다. 

 

  몸은 머리가 움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지난 날 걸어온 길과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고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예측하려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기준의 한쪽 저울은 그분의 행적이요 다른 쪽 저울은 그분의 가르침입니다. 이 저울로 지난 날과 오늘날은 물론 앞으로 갈 날의 교회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머리의 시선은 역사성으로 과거를, 사랑으로 현재를, 공동체성으로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구세주의 성모로 삼으신 시점이 요셉과 정혼한 직후였던 이유는 아브라함 이후 유다인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구세주를 준비시키신 역사성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시행착오가 많았고 허물 투성이였던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디딤돌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오로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언자들과 아나빔들에 의해서 메시아를 기다려온 인류 유일의 역사임을 꿰뚫어 보고, 해외 디아스포라에 살던 동족들에게 알림으로써 이를 알아듣는 선교활동의 동역자를 구하고자 진정성 있게 호소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심을 그분은 온몸으로 깨우쳐주고자 하셨습니다. 마음과 몸과 힘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일깨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같은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도 깨우쳐주셨습니다. 적어도, 다른 이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우리도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이 오늘날 윤리와 법률이 되었습니다. 가능하면, 다른 이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먼저 행하되 대가를 기대하지 말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을 것을 기대하며 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영성이 되었습니다. 윤리와 법률은 사랑의 최소한이요 영성은 그 최대한입니다. 이 가르침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상호 섬김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희생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의 모범으로 나타났고, 이 두 가지가 다 오늘날 미사 중 성찬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두 가지를 합해서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신 자기비허의 사랑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사랑을 교회라는 터전에서 공동체성으로 구현하고자 동분서주하였습니다. 부활 신앙과 공동생활 양식은 그들이 알아들은 교회의 기반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기반이 되어야 그리스도 교회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교들은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세 가지 양식으로 재림하시고 현존하시는 그분을 만날 수 있음을 현대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것이 말씀이요 성찬이며 사랑의 섬김입니다. 특히 이 섬김은 가난한 이들에게 되갚아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베푸는 사랑으로 이루는 공동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고백문에 옛 교부들이 정해놓은 교회의 기준, 즉 하나이요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여야 한다는 기준보다 더 성경적이며 더 정통성 있는 기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공의회의 쇄신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가톨릭교회가 정통 그리스도 교회가 될 수 있는 기준을 더 추가하였습니다. 그것은 세례 받은 모든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존중하는 일이 그 첫째인데, 이로써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경청하고 소통하며 공동으로 합의하는 인격적이고 민주적인 구조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 그 둘째인데, 이는 교황청이나 교구청만의 일이 아니라 사도직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일입니다. 추가된 이 두 가지 기준은 신앙고백문의 네 가지 기준에만 집착하다가 잃어버린 냉담자들과 익명의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을 불러 모으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공의회가 상기시킨 세 가지 기준은 새롭지만 더 오래된 기준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야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 있고 새로운 인간도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