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성령의 이끄심으로 회복하는 복음의 사회적 매력

성령의 이끄심으로 회복하는 복음의 사회적 매력 사도 15,22-31; 요한 15,12-17 / 2022.5.20.;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서로 사랑하라.”는 복음의 기쁨이 가져다주는 힘은 사회적 매력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사도들을 움직였던 힘 역시 복음의 기쁨이었으므로 초대교회는 복음의 사회적 매력을 한껏 발산하여 로마의 복음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이방인 입교자 할례 논쟁이 생겨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서는 처음으로 닥친 이 내부 갈등을 사도들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논쟁 끝에 공동합의로 가까스로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 출신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에 따라 선행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더 이상 낡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게끔 선교의 고속도로가 닦인 격이었습니다. 이렇..

부활 제5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15,9-11: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9절)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즉 사랑의 관계에서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드리는 그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을,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우리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며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초대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포도나무의 비유가 주는 역사적 교훈

포도나무의 비유가 주는 역사적 교훈 사도 15,1-6; 요한 15,1-6 / 2022.5.18.;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사도들의 사명을 겨냥하여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농부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하느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그 포도나무의 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신앙에 충실하면 풍성한 선교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내쳐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빈약한 성과를 내거나 또는..

부활 제5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15,1-8: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아들은 우리가 아들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우리에게 참포도나무가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당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얻는지 보여주시고자 하신다. 당신을 포도나무라 하시며 그분과 결합한 이,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린 이 그리고 성령 안에서 그분께 결합한 이들은 가지이다. 가지들은 포도나무와 연결됨으로써 포도를 맺는다. 아버지께서는 농부로서 우리 마음에서 사악한 씨앗을 없애고, 말씀의 쟁기로 우리 마음을 갈아엎고, 계명의 씨앗을 뿌리시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신다. “열매를 맺지 않는 ..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사도 14,19-28; 요한 14,27-31 / 2022.5.17.;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리스트라에서 돌에 맞아서 죽을 지경으로 심하게 겪은 박해의 상황을 전합니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음 선포의 뜻을 접지 않았음은 물론, 가사(假死) 상태에서도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그 내용은 복음 선포를 멈추지 말라는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정도의 환난은 겪어야 마땅한 것이니,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신자들을 오히려 격려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의 이런 처신과 태도에서 복음 선포의 진정성을 본 티모테오는 감동한 나머지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참조: 2티모 3,11)..

부활 제5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4,27-31: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27절)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상속재산으로 주셨다. 그러기에 이 평화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하셨기 때문이다. 이 평화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에게서 온다. 그것은 당신의 현존에서 오는 것이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평화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평화라고 우리가 믿을 때나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1요한 3,2) 때나 우리의 평화가 되는 것은 그..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리라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리라 사도 14,5-18; 요한 14,21-26 / 2022.5.16.;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비장한 자리에서도 아직은 미덥지 못했을 당신 제자들인데도 그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잘 지키리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라고 부르신 두 분, 즉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께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성령의 도우심은 초대교회 현실에서 공동생활 양식과 이를 전하는 선교활동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가진 것을 공동의 소유로 내어 놓는다거나 믿는 이들을 형제처럼 받아들이는 공동생활 양식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능가하는 성령의 기운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박해자였던..

부활 제5주간 월요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부활 제5주간 월요일 /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를 읽다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도대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란 어느 정도를 두고 하는 말일까? 바오로 사도가 만난 앉은뱅이에게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바오로는 그에게 치유와 구원의 기적을 베풀 수 없었을까? 가톨릭 교회는 구원의 은총이 인간 편에서의 선행과 공로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자유롭고 자비로운 은총 안에서 허락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와 정반대인 듯 보이는 또 하나의 논리를 곁에 세워 두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베풀어지는 것이지만, 그 구원을 받고자 인간 편에서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오직..

부활 제5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5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4,21-26: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21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며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당신이 누구신지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당신과 아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그들이 올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믿음은 사랑을 통해 작용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으로 바라만 보았던 진리를 눈으로 보게 해 주실 것이다. 즉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리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의 말씀과 지혜를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

다해 부활 5주일 /요한 13,31-35 <조건없이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사랑♣>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다해 부활 5주일 /요한 13,31-35 <조건없이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사랑♣>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조건없이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사랑♣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다해 부활 5주일 /요한 13,31-35 예수님께서는 이제껏 세상을 향하여 설교를 하셨으나 아무 결실 없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12,36-43). 이제 그분께서는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13,1), 당신 자신을 내어주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하시며 그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십니다(13,1-30). 그리고는 유다가 떠나가 버린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