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리라

수성구 2022. 5. 16. 04:31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리라

사도 14,5-18; 요한 14,21-26 / 2022.5.16.;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비장한 자리에서도 아직은 미덥지 못했을 당신 제자들인데도 그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잘 지키리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라고 부르신 두 분, 즉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께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성령의 도우심은 초대교회 현실에서 공동생활 양식과 이를 전하는 선교활동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가진 것을 공동의 소유로 내어 놓는다거나 믿는 이들을 형제처럼 받아들이는 공동생활 양식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능가하는 성령의 기운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박해자였던 바오로를 번개와 벼락으로 돌려세우셨고, 십년 넘은 숙고 끝에 예수는 메시아이시라는 부활 신앙을 확신시켜 주셨으며, 바르나바를 시켜 사도단과 안티오키아 공동체 신자들에게 신원을 보증함으로써 근신 중에 있던 사울을 사도요 선교사로 세우신 것도 모두 성령의 이끄심이었습니다. 이런 성령의 이끄심에 힘입어 그는 20여 년 간 로마제국에 복음을 전했으며 끝내 그의 사후 2백여 년 만에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으로 하여금 국교로 삼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독서는 그 첫 번째 선교여행 중에 겪은 일들 가운데 대표적인 장면 하나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코니온에서는 박해를 받아 쫓겨나더니(사도 14,5) 리스트라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쳐준 영웅으로 칭송을 받기도 했으나(사도 14,11), 이코니온에서부터 쫓아온 유다인 박해자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사도 14,19).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만큼이나 극적이었던 이 과정을 다 지켜본 티모테오가 성소를 느껴서 첫 제자로 자원한 일도 성령께서 바오로의 선교활동에 개입하신 커다란 도우심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사도 16,1-4; 2티모 3,11). 

 

  이렇듯 초대교회 시절에 부활의 사기지은으로 맹렬하게 활약하셨던 성령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모든 인류의 조상이며 특히 유다인들의 직계 선조인 노아가 의롭고 흠없이 살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창세 6,9). 그리고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인 아브라함이 고향 칼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탈출하게 하신 바 있었는데(창세 12,1), 이는 노아의 아들 함의 자손인 니므롯이 하느님께 맞서고자 세운 바벨탑이 상징하는 우상 숭배 문명을 탈출한 것이었고 성령께서 아브라함에게도 노아에게 주어진 같은 신앙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10대손인 아브라함의 족보를 따지자면 그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으로서 특히 그 4대손인 에베르의 큰 아들 펠렉의 6대손이었는데, 에베르의 작은 아들인 욕탄은 자손들과 함께 바벨탑의 동쪽으로 가서 동부 산악 지방인 스파르까지 가서 살았습니다(창세 10,30). 노아의 또 다른 아들인 함의 후손들이 하느님 신앙을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물들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천하장사로 교만해진 니므롯이 바벨탑을 세운 것과 비교해 보면, 셈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과 욕탄이 각각 서방과 동방으로 나뉘어 노아의 유훈대로 만방에 흩어져 번성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파한 것은 역시 성령께서 이끄신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이를 두고 창세기에서는, “에베르에게서는 아들 둘이 태어났는데, 한 아들의 이름은 펠렉이요 그 동생의 이름은 욕탄이다. 그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창세 10,25)고 기록해 놓은 이유가 바로 이 하느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대홍수 이후에 노아는 제일 먼저 하느님께 제사를 바쳤습니다(창세 8,20). 카인의 후예들이 죄를 저질러(창세 6,5-6) 대홍수를 자초했으므로 속죄를 해야 했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시고자 자신들을 살려주신 데 대해 감사도 드려야 했으며, 대홍수가 그친 후에 하느님께서는 무지개로써 노아의 후손들을 축복하시며 번영의 계약 표징으로 삼으시겠다(창세 9,9-17)고 하셨으므로, 이때부터 노아와 그 후손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내면서 여기서 알아낸 하느님의 뜻을 살펴 살아가는 경천(敬天)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으로 가 자리를 잡은 욕탄과 그 자손들은 이 속죄와 감사와 경천의 의식으로 살아가는 문명을 세웠으니,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고조선 문명(신용하)입니다. 조상 노아의 예에 따라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은 사람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 중에 으뜸이었으므로, 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공력을 들여서 쌓은 제단이 크고 무거운 돌로 쌓은 고인돌이었습니다. 제사의 전통과 고인돌 유적은 한민족이 아브라함과 비슷하거나 조금 이른 시대부터 성령께서 일러주시는 이끄심에 충실하고자 애를 썼음을 알려주는 역사의 흔적이요, 한민족이 신성에 뿌리내린 문화를 간직하도록 성령께서 이끄신 경천 사상의 발자취인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어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합작으로 이루어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에서 이루신 바를 기준으로 삼도록 당신의 성령을 보내시어 세상에 현존하시고, 성령께서는 이 기준이 보편적으로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에서 뿌리내리고 꽃피우며 열매 맺도록 이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