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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5주 토요일/요한 15,18-21 <신앙인의 소속감과 정체감 ♣>신부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수성구 2022. 5. 21. 04:38

부활 5주 토요일/요한 15,18-21 <신앙인의 소속감과 정체감 ♣>신부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5,19)
 

 

부활 5주 토요일/요한 15,18-21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삶의 방향을 바르게 해주는 것 가운데 소속감과 정체감이 있다. 이 둘은 실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 내가 어디에 속에 있는가 하는 소속감이 분명할 때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감도 더 명확해진다. 소속감과 정체감이 확고해질수록 자존감이 커가고 영성생활도 성숙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18-27절의 내용은 제자들이 예수님 때문에 겪게 될 세상의 ‘증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부분은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머물면서 그분의 모범대로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체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 앞 대목(15,1-17)과 두드러지게 대조를 이룬다. 곧 사랑의 공동체가 증오의 세상과 직면한 셈이다. 이런 대조는 사실상 두 대목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면서, 사랑과 증오가 뒤얽힌 인간 삶의 실존 상태를 명확히 드러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거든 여러분에 앞서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15,18) 제자들은 예수님께 속해 있으므로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하도록 제자들을 격려하신다(27절 참조). 예수님께 속한 제자들은 세상의 증오와 미움을 받고 그분께서 걸으셨던 길을 가야만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를 배척하고 하느님을 등진 세상은 제자들마저 적대시하고 증오한다(18-19절). 제자들을 증오하고 박해하는 이들은 믿지 않는 유다인들로서(22-25절 참조) 그들은 예수님을 파견하신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15,21ㄴ). 그러나 이 세상도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구원의 가능성은 있다(14,31 참조). ‘세상’은 심판의 대상이면서도 구원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 속한 제자들은 모든 증오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에 예수님을 증언해야 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15,20)는 말씀은 당신의 모범을 따르고 당신의 권위에 근거해서 행동해야 함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나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수님을 배척하는 세상에 속한 사람인가? 세례를 받고 수도자로서 사제로서 축성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사랑과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살아냄으로써 그분께 속해 있음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신자인가보다 신앙인인지가 더 중요하며, 박해나 고통 중에도 내가 어디에 소속된 누구인지를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명심할 점은 소속감과 정체감을 명확히 하는 것은 세상을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상황이 어떻든 나는 나를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느님께 속한 사람임을 분명히 의식해야겠다. 내가 이런 소속감을 분명히 가짐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자아정체감이 커갈 것이다. 정체감이 분명해질 때 나는 하느님을 등지고 예수님을 배척함으로써 우리를 박해하고 증오하는 세상, 심판의 대상이 되어 있는 세상까지도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대인관계로 눈길을 돌리면 내가 사랑의 사람, 사랑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소속감과 정체감이 뚜렷해질수록 자신을 괴롭히고 분노케 하고 증오하는 이들까지도 품을 수 있으리라!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