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리디아와 강완숙 골롬바

수성구 2022. 5. 23. 04:19

리디아와 강완숙 골롬바

사도 16,11-15; 요한 15,26-16,4 / 2022.5.23.;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이기우 신부

 

  그리스도인들은 새 인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초대받은 사람들로서 육신과 세속의 차원을 넘어서는 삶을 통해서 악의 세력을 소멸시키고 성령의 사기지은에 따라 세상에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새로운 인류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서 나타난 성령의 사기지은을 고루 입었으므로 성령의 강림으로 부활 신앙을 체험하고 공동생활 양식을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의 신기원을 실현시켰습니다. 여기서 죄와 악의 공격을 받아도 영향을 받지 않고 여전히 선의 기운이 상하지 않는 은총은 새로운 존재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류투성이의 현실 속에서도 진리를 알아보는 빛남의 은총은 새로운 존재들이 우뚝 서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또한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빠름의 은총으로는 통공의 에너지를 발휘하여 믿는 이들이 연대하는 새로운 인류의 단위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믿는 이들인 이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진리를 실천함에 있어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받쳐주는 사무침의 은총이 있는데, 이 은총이 앞선 은총 세 가지를 모두 종합시켜서 부활의 은총을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리디아의 삶과 활동은 그 좋은 사례입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서 만난 리디아는 그 이후 선교 여행을 마칠 때까지 성령의 그림자처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 들어갔을 때 유다인들이 모이는 기도처로 가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여기서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리디아가 그의 인품과 신앙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을 필리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처로 내어놓았는데,  바오로는 리디아의 집을 거점으로 필리피에 복음을 전해서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수행하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척박한 도시 티아디라 출신인 리디아가 필리피까지 진출해 있었던 이유도  자색 고급 옷감을 국제적으로 교역하려던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그녀의 국제적인 사업수완과 안목이 바오로의 국제적인 선교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뒷배가 되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의하면 티아티라에는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신자들을 잘못 가르치고 속여서 불륜을 저지르게 하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는 이제벨”(묵시 2,20)이라는 여자를 용인하고 있어서 큰 책망거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티아티라에 있던 유다인 상인들이 조직한 조합이 트림나스 신전의 후원조직에게 곗돈의 일부를 바치면서 은밀한 관계를 맺고 곗날이 되면 트림나스 신전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고 신전 사제들과 음행을 저지르는 사악한 우상숭배 풍습에 물들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겨운 풍습을 익히 보아온 리디아로서는 바오로를 처음 마주쳤을 때, 그가 전하는 복음선포 활동을 보고 나서 그에게 사심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교우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혀 주지 않기 위해 몸소 천막 만드는 노동까지 하며 좋은 표양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건전한 것은 기본이고 영적으로도 훨씬 더 고귀하게 보였을 것이고 그래서 첫 눈에 알아보고 자기 집을 내놓는 호의를 베풀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후 리디아는 바오로 일행이 필리피에서 맞게 된 박해를 계기로 남부 아카이아 지방으로 선교를 가도록 조언하기도 했을 것이고, 다시 소아시아의 큰 도시인 에페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2년 반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라도 귀한 양피지에 편지를 써서 이미 공동체를 세워 놓은 여러 곳에 보내서 연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에서 리디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강완숙 골롬바입니다. 그녀는 1794년 말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했을 때 자신의 집에 주문모 신부를 편히 모시고 사람들과 포졸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신자들이 주 신부에게서 성사를 받도록 도왔습니다. 한편 여성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서 입교시키고 그 여성 신자들과 함께 활발하게 한양을 중심으로 지방에까지 선교활동을 벌였는데, 궁중의 왕족 여인들과 궁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의지할 데 없는 불행한 여인들을 거두어 자기 집에서 살게 하면서 교리를 배우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부들과 처녀들을 모아 함께 생활하는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최초의 동정부부로 살다가 순교한 이순이 누갈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기 전까지 이벽을 계승하여 활약하던 열명의 평신도 지도자들도 세례성사를 베푸는 일은 강완숙 골롬바에 모시고 있던 주 신부에게 맡겼겠지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은 명도회 회장으로 임명된 정약종과 함께 열심히 수행했기에 비약적인 신자 증가를 이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져서, 당시 4천여 명이던 신자를 1801년 신유박해 때까지 만여 명으로 늘릴 수 있도록 맹활약했던 명도회 여성 회장이 강완숙 골롬바였습니다.

 

  이렇듯, 리디아와 강완숙은 보편교회의 초대교회에서와 한국교회의 초대교회에서 새 하늘과 땅의 새 역사를 보여준 새 인류의 전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