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6. 4. 02:02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7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21,20-25: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

 

예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나를 따라라”(19절) 하셨을 때 베드로가 돌아다보았더니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21절) 하고 물었을 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22절) 라고 하신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을 본받으라는 뜻으로 “나를 따라라.”라고 하신다. 행동적인 신앙은 주님의 수난의 본을 보고 완전하게 배웠으니 주님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막 시작된 관상은 주님께서 오셨을 때 완전하게 될 것이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견디어 내는 신심은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따르지만, 지식의 충만함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채워지며 그때야 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요한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있으리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요한은 죽었다. 요한은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뒤로 73년을 더 살며 트라야누스 황제 때까지 살다가 다른 사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평화롭고 평온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이 오래 살아 내가 올 때까지 지상에 남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해도 너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라. 너는 너의 것, 곧 네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를 따르기나 하여라.’ 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온 세상도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많은 일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단 한 권의 복음서만을 남겼다. 요한은 묵시록도 썼으며, 또한 매우 짧은 서간도 한 편 남겼다. 지금 성경에 있는 세 편의 서간은 모두가 요한의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세 편을 다 합쳐도 100줄이 되지 않는 글이다. 이 복음을 자신이 썼다고 드러내는 이유는 그는 복음을 제일 마지막으로 썼고 복음을 쓴 이유가 그분이 자기를 사랑하셨고 자기 기록이 믿을만한 것이며,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25절)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만물을 지혜로 창조하셨으며 그분의 지혜는 한계가 없으므로(시편 147,5 참조) 한계가 있는 이 세상은 무한한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자기 안에 다 담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한계가 있는 우리 인간의 지성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말씀을 읽고 실천해야 한다. 끊임없이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유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것들을 잘라 버리고 선을 실천하여 성숙해짐으로써 자신을 밝게 하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리하여 구원 자체이신 주님을, 하느님을 차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