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복음 환호송)

수성구 2022. 6. 3. 05:50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복음 환호송)

사도 25,13-21; 요한 21,15-19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022.6.3.; 이기우 신부

 

  오늘은 19세기에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순교한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들을 기억하는 날이며, 성령 강림 대축일을 앞두고 성령에 의한 창조의 신비를 묵상하는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발현하시어 믿음을 굳게 하심으로써 사도로써의 양성 과정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드로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 대화는 세 차례에 걸쳐 행해진 베드로의 배반 행위를 사면하는 뜻으로 세 번 반복해서 신앙을 고백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실 성령을 받기 위한 마지막 준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독서에서는,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 바오로를 호송하던 로마 총독이 그에 관한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바오로와 그리스도 신앙을 바라보는 로마인들의 시각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황제에 대한 충성이냐 반역이냐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유다인들의 종교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로마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보는 시각은 예수가 이미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에서는 예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독서에서는 그저 유다인들의 종교 문제로만 다루어지고 있는 이 지점이 사실 초대교회에서나 오늘날 우리네 현실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하느님 나라가 창조되는 데 있어서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가장 중요한 영인데, 세상에서는 그 영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종교적인 사정으로만 치부한다는 혼돈 상황입니다. 베드로도 바오로도 심판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이 상황에 개재되어 있는 혼돈과 함께 성령께서 이루실 새 창조가 준비되어 있는 기운을 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에는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는 말씀이 어울립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알려진 세상은 지중해를 둘러싼 세계였고 이 세계를 대부분 로마 제국이 정복하고서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바오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자들의 주된 선교적 관심은 로마를 복음화하는 목표를 이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신자들은 유다인들과 로마인들의 이중 박해와 영지주의 이단을 비롯한 내부의 사상적 갈등을 견디어 가며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정은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창기 지도자들인 이벽과 이승훈, 약전·약종·약용 등 정씨 삼형제들은 유림과 조정의 박해와 함께 북경 교구의 본의 아닌 박해마저 겪어야 했던 데다가 후대에 남겨 놓은 저작들에 담긴 정신적 노력의 치열함이 상당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선각자들의 치열한 지성적 노력이 씨앗이 되어 신앙을 받아들인 평신도들 역시 전국에 흩어져서 교우촌을 이루며 포졸들과 주민들의 눈을 피해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갔습니다. 이 때의 교우촌 생활을 잘 알려주는 책이 윤의병 신부가 쓴 소설 ‘은화’입니다. 이 모두가 성령에 의한 창조 이전에 드리우게 마련인 혼돈을 대변합니다. 

 

 이 시절 교우촌 신자들의 영성을 잘 드러내는 표지가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는 짧은 호칭 기도입니다. 충남 해미 성지에 가면, 생매장터가 있는데 그 이름이 ‘여숫골’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모르던 구경꾼들이 천주교 신자들이 생매장 당하여 죽어가면서 기도하는 소리를 잘못 들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신자들은 어처구니 없이 죽어가면서도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예수, 마리아, 요셉!”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리아와 요셉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라고 평소에 기도 바쳤을 테지만, 너무 급박한 상황에서 문장을 생략하고 이름만 다급하게 불렀던 데서 나온 호칭기도일 것입니다. 평소에 천주가사나 주교요지 같은 교리서적을 통해서 얻은 교리지식도 상당했던 교우들이지만, 교리지식보다 더한 예수 사랑이 영성으로 배어나왔다고 하겠습니다. 

 

  보편 초대교회에서나 한국 초대교회에서, 또 지성으로나 영성으로 치열했던 초대교회들의 노력이 박해의 혼돈 상황 속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성령을 맞이할 준비였듯이, 이제 곧 다가올 성령 강림을 맞이해야 할 우리에게도 필요한 준비는 지성으로도 영성으로도 치열한 각성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기억하게 해 주실 성령께서 우리네 삶과 인간관계와 활동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