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알지 못하는 신에게

수성구 2022. 5. 25. 01:25

알지 못하는 신에게

 

사도 17,15-18,1; 요한 16,12-15 / 2022.5.25.;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사도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광장에서 직접 아테네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이제까지는 디아스포라의 유다인 회당을 매개로 복음을 전해온 그가 다신교 풍습에 젖어 있던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선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무수한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고, 하도 섬기는 신이 많다 보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 제단을 세워 놓고 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오로는 그들이 섬기던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현세에서 뛰어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현세적 상황에서도 인간적 기대가 투사되어 실현되면 신이 발생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발생적 신관’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랑과 선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 ‘계시적 신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모든 민족들의 종교는 자연적인 신관으로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느님께서 직접 밝혀주심으로써 알게 된 계시적인 신관이 생겨났습니다. 이 계시적 신관을 받은 민족이 히브리 민족과 한민족입니다(창세 10,25.30). 

한민족이 받은 계시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신성의 발자취들입니다. 즉, 민속으로는 제천의식이요 유적으로는 고인돌이며 기록으로는 단군신화에 기록된 천손의식과 홍익인간 사상입니다. 한민족의 신관은 유난히 경천사상이 뚜렷하고 여기서 우러나온 효의 윤리와 선과 의로움을 중시해 온 민속 등에서 나타납니다. 고려와 조선조에 무신론적 통치 이데올로기에 눌려 수면 아래에 잠복한 채 민간 심성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던 이 한민족의 신관을 새삼 깨닫게 된 역사적 계기는 천주교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이 들어온 오묘한 섭리의 과정 덕분이었습니다. 

 

  중국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이 지은 한역서학서의 도움으로 조선의 선각자들이 본격적인 그리스도 신앙의 신관에 접할 수 있었고, 이들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 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신앙 감각의 도움을 받아 그 진리성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문난적으로 몰릴 각오를 무릅쓰고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였습니다. 

 

  실제로 경천사상과 효의 윤리, 그리고 선과 의로움을 유난히 강조하는 한민족의 신관은 인종적으로 우리 민족과 유사한 이웃 중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보여주는 자연발생적 신관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신관은 쉽게 바뀌지 않고 민족성과 민족문화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인데, 지금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바, 힘과 부를 숭상하며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세속적인 행태에서도 그들의 신관이 잘 나타납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신관이 무속과 역술 등으로 미신화된 배경에는 고구려 왕조 시대 이래 조선 왕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계시 신관을 억눌러온 불교와 유교 등의 무신론적 사상 통제가 자리잡고 있고, 이는 무수한 신들을 만들어 내는 역작용을 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조로 알려진 환웅과 그 아들로서 국조가 된 단군도 신으로 숭배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단군신앙입니다. 특히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신적 기원을 알려주는 국조(國祖)로서 공경의 대상일 뿐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나머지 신들도 공경하고자 하는 뛰어난 조상들을 부르는 경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흔해 빠진 신 개념의 세속화 내지 사사화 현상에 대한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겨나서, 과학만능시대가 도래한 21세기 한국 사회에는 광범위한 무신론과 일상적인 유물론 사상 풍조가 만연해 있는 상황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알지 못하는 신’을 공경하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선교하던 지혜로운 방식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신과 하느님 신앙을 오해하는 모든 이들의 숨은 지향을 읽어야 합니다. 다신론이든 무신론이든 또는 유물론이든 신관에 대한 역작용과 부작용 현상은 신과 하느님 신앙을 부인함이 아니라 신적 가치의 실현을 갈망하는 표현입니다(사목헌장, 21항). 

 

  불교와 유교 등 무신론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는 신적 가치라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으로 차별하면서 양심과 사상과 신앙의 자유가 없었고 인간 존엄성은 너무나 하찮게 취급되었습니다. 이에 천주교는 신적 가치에 따라 평등과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요구하였으며 백년 박해 만에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아 인간화된 문명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기본 가치를 넘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평등이라는 실질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국내적 과제가 남아 있고, 외세에 의해 강요당한 분단과 분열을 자주적으로 극복하고 남북교류를 앞당겨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해야할 민족적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 과제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경직된 서구적 신관에 편향되었던 기존 신자들과 무분별하게 무신론과 유물론에 기울어졌던 많은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 신앙에 따른 한민족의 신성을 체험하는 민족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오래 전부터 아시아의 동방에서 하느님을 섬겨 온 우리 민족을 진리의 영께서 이끄실 섭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