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6. 12. 05:17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우리는 지난주일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며 부활시기를 마쳤는데, 이제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신 모든 업적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업적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미하기 위함이다. 즉 아버지께서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해 이루신 구원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동시에 삼위일체의 신비의 영광에 대해 흠숭의 예를 바쳐드리는 것이다.

복음: 요한 16,12-15: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살아 계신 실체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구원적 업적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삼위의 신비는 우리가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결코 삼위의 신비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는 역사적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어떤 신학적 이론으로 추론되거나 그렇게 정립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일깨워주시면서 당신의 구원 사명을 완성해줄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시는 오늘 복음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15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위격적 다양성이 나타나지만, 단일성을 말하고 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 안에 하나이다. 성령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며, 아버지의 뜻을 아드님은 성령 안에서 이루신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살 때, 성령께서는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해주시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알려주실 것이다(13절).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철학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제물이 되신 나자렛 예수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이다. 이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지성이 아니라, 사랑을 동반한 신앙이다. 즉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진리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할 말이 많지만, 그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12절). 이 말씀을 하실 때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구원업적을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14절) 성령이 오셔야 했다. 성령은 유일한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더 깊이 참여케 해주시는 분이시고, 그 진리를 살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실재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의 성령’은 ‘생활케 하는 성령’이 되신다. 그래서 우리 모든 신자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살도록 노력함으로써 자신 안에 성령께서 현존하심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1절),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써 보증해주시는(로마 5,5)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로마 5,2)의 은총을 누린다고 말한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충실히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차지하시어 우리 행위의 내적 원리가 되고자 하신다. 그분이 우리의 내적 원리가 되신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우리의 삶을 모두 성령의 인도에 따른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에 대한 확고한 기다림 속에서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성령 안에 살려 노력하는 삶이 필요하다. 즉 삼위일체의 신비는 추상적인 앎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령 안에서가 아니면 성령이 무엇인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한다. 하느님은 사랑의 관계로서 하나이신 분이심을 잊지 말고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그분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