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연중 10주 금요일/ 마태 5,27-32 <죄의 뿌리인 마음의 살핌과 존엄한 여성♣>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수성구 2022. 6. 10. 04:46

연중 10주 금요일/ 마태 5,27-32 <죄의 뿌리인 마음의 살핌과 존엄한 여성♣>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죄의 뿌리인 마음의 살핌과 존엄한 여성♣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 



연중 10주 금요일/ 마태 5,27-32

 

약성경은 간음죄를 금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탐욕(탈출 20,17; 집회 41,23)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5,28)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교의 미쉬나에서도 “손으로, 발로, 생각으로 간음죄를 범하지 말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좀더 근본적으로 음욕을 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죄를 범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죄의 뿌리인 마음부터 깨끗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5,30)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눈, 손, 발을 빼버리는 것이 소용없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눈과 손, 발이 죄를 짓는다고 그 지체를 절단하는 것으로 유혹을 이길 수는 없으며 올바른 생활의 근원은 정결한 마음에 있다는 가르침입니다(5,8).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도 늘 맑고 바른 마음을 지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사실 마음은 모든 죄악이 생겨나는 근원적인 자리이며, 마음이 비뚤어지면 왜곡되고 비윤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마음과 욕구의 비뚤어짐과 혼탁해짐은 그릇된 행동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고치려면 그 뿌리인 마음의 작용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움직임은 고요와 침묵 가운데에서 행동을 멈추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 주의하면서 미세한 감정의 분출과 의식의 흐름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은근한 움직임들 안에 나의 욕구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요인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예수님께서는 남이 죄를 지을 기회를 절대로 주지 말아야 하며 여성의 존엄성을 절대로 보장해야 한다고 가르치심입니다. 본디 이혼장을 써주는 제도는 이혼을 당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미흡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혼뿐만 아니라 재혼까지도 금지하십니다.

한 번 맺은 결혼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유효하므로 재혼은 물론 허용되지 않고 나아가서 소박조차도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결혼관입니다(5,31-32).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랑의 표현이어야 하며 이기적인 욕망이나 지나친 쾌락의 요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이런 엄격한 가르침의 예외로 '불륜을 저지른 경우'에는 소박과 재혼을 허용하였습니다(5,32).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적 차별을 받던 여성들의 지위를 남성과 대등하게 인정하시고 존중하셨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어떤 동기나 조건, 가치에 따라서도 서로를 차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모두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죄가 생겨나는 마음자리를 고요와 침묵 가운데 살피고, 존엄한 인간성을 서로 존중하는 거룩한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