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듣기는 빨리, 말하기는 더디, 보기는 똑똑히 하기

듣기는 빨리, 말하기는 더디, 보기는 똑똑히 하기 야고 1,19-27; 마르 8,22-26 / 2022.2.16.;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그러면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을 얻게 됩니다. 이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의 세속적 죄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하느님 말씀은 공손히 받아들이되, 받아들인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데 힘 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실행하는 자기 자신도 행복해지지만 그 실행의 혜택을 받는 이들도 행복해집니다. 이 신심에 따라 하느님 말씀을 실행하면 고아와 과부 등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집니다. 이상이 사도 야고보의 권고인데, 이는 이미 부활한 삶의 행동양식입니다. 마르코 복..

연중 제6주간 수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6주간 수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어느 눈먼 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유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점이 좀 특이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눈먼 이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 뚜렷하게 보지 못하자 다시 두 눈에 손을 얹으셨고, 그제야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눈먼 이의 치유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어서 예수님께서도 애를 좀 먹으신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보다는 그의 시력이 단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연중 제6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6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8,22-26: 베싸이다의 앞 못 보는 사람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베싸이다 소경을 보게 해주시는 기적을 들었다. 좀 특이한 모습이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 앞에서 그를 치유해주신 것이 아니라, 군중을 떠나 마을 밖 조용한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가시어 치유해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신 기적(7,31-37)과 비슷하다. 먼저 사람들이 예수님께 병자를 데리고 온다(7,32=8,22). 그리고 예수께서는 병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신다(7,33a=8,23a). 그리고 환부에 침을 바르신다(7,33b=8,23b)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입에서 나오는 침이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것을 당신의..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 8,21)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 8,21) 야고 1,12-18; 마르 8,14-21 / 2022.2.15.;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선문답(禪問答) 같은 대화가 서로 엇갈려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배로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카파르나움 근처 평원에서 두 차례나 빵의 기적 사건을 겪은 후 몰려드는 군중을 피해서 급히 서둘러서 호수를 건너가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자들은 빵의 기적 사건에서 굶주린 군중에게 나누어주고는 정작 자신들이 먹을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미처 빵을 챙겨오지 못한 형편을 짐짓 모르시는 척 느닷없이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르 8..

연중 제6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6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 8,14-21: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15절) 하신다. 유다인들에게 누룩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악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그들이 사용하던 누룩이란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이 사용하는 누룩은 바로 빵을 구울 때 다음에 빵을 굽기 위하여, 밀가루 반죽을 조금 떼어놓아 발효되게 한다. 즉 썩힌다. 이것을 또 빵을 구울 때 사용하는 것이다. 썩는다는 의미에서 악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조심하라는 누룩의 의미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방해되는 인간성의 병폐, 부패의 ..

하늘의 표징, 시대의 표징

하늘의 표징, 시대의 표징 야고 1,1-11; 마르 8,11-13 / 2022.2.14.(월);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바람에 논쟁이 벌어지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셔야 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마르 8,12). 논쟁을 걸어온 바리사이들은 이번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줄곧 적대적 태도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탄식을 하시게 되었느냐 하면, 그분은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이심을 누차 가르침이나 기적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고약하게도, 이미 보여준 표징들은 무시하고 자신들이 인정할 만한 표..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시련은 누구에게나 어떠한 형태로든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질병의 고통으로, 누군가에게는 불의의 사고로 자녀를 잃은 비통함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랜 기간 공들인 수고와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허탈함으로, 어떤 이에게는 헌신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된 상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시련이 왜 하필 나에게 다가온 것인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하느님께 따져 보기도 하지만, 그분께서는 침묵 속에서 우리를 방관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시던 예수님에게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하느님처럼 말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복음: 마르 8,11-13: 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빵의 기적이 있고 난 뒤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한다. 즉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참된 메시아로서 그것을 말씀과 행적으로 드러내셨다. 바리사이들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시험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2절) 하셨다. 예수님의 이 거절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마음의 회개와 더불어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이르는 영적이고 내적인 변화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

연중 제6주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6주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동경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돈’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유함이 행복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가뜩이나 힘들어진 요즘 같은 시기에 솔직히 돈만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돈이라는 것은 도통 만족을 모르는 듯합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 있어야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은 대개 지금 자신이 보유한 자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앞으로 자산이 더 많아지면 그때 가서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합..

연중 제6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6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6주일: 다해 오늘 복음은 우리가 마태오 복음(5,1-12)에서는 산상설교로, 루카 복음에서는 평지설교로 전해주고 있다. 마태오 복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 신앙인들은 구원의 말씀을 생활화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올라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루카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내려오신다.’ 즉, 우리가 당신을 향해 올라갈 수 있도록 당신을 낮추어 내려오신다는 의미이다. 복음: 루카 6,17.20-26: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루카 복음에서는 4개의 축복이 나온 다음 4개의 저주가 나오는데 이렇게 축복과 저주가 쌍을 이루게 한 것은 ‘축복’의 의미와 효과를 더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내용은 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