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야고 5,13-20; 마르 10,13-16 / 2022.2.26.;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생겨난 속담이 지구촌 전체에 어린이 교육에 대한 진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작가 베티 B. 영이 같은 제목으로 책을 내서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이들에게는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속담입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마을 전체에 사는 이웃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마을 전체의 관심과 도움을 받고 자라난 아프리카 아이들이 서구인들을 일깨워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아프리카 마을을 한 백인 문화인류학자가 방문..

연중 7주 토요일/ 마르 10,13-16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한 태도와 마음가짐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7주 토요일/ 마르 10,13-16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한 태도와 마음가짐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한 태도와 마음가짐 ♣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연중 7주 토요일/ 마르 10,13-1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외적 태도와 내적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첫 부분(10,13-14)에서 그분께서는 쓰다듬어 달라고 어린이를 데리고 온 이들을 꾸짖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10,14)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신분이 ..

연중 제7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7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7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10,13-16: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놓고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 단순히 어린이처럼 처신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15절). 어린이들이 부모를 바라보듯이 제자들도 하느님을 그렇게 바라보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을 받아들이고 행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스승이 제자나 어린이를 축복하는 관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아이들이 축복을 받도록 예수님께 ..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야고 5,9-12; 마르 10,1-12 / 2022.2.25.;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 이는 매우 도발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혼하려고 혼인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혼인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노력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혼인과 가정 생활을 잘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가정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어야 정상이었습니다. 질문의 의도가 당신을 시험에 빠뜨리려던 것임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연중 제7주간 금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7주간 금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이혼을 금하는 우리 교회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혼인이 가지는 참된 의미와 신비를 묵상하게 하는 예수님의 소중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완고함’ 때문에 모세가 이혼을 용인해 준 것이지, 본디 하느님 뜻은 그렇지 않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말씀(1,27; 2,24)을 직접 인용하시면서 태초부터 계획된 혼인의 신비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이처럼 남녀가 혼인을 통하여 이루는..

"자 이제, 부자들이여!"

"자 이제, 부자들이여!" 야고 5,1-6; 마르 9,41-50 / 2022.2.24.;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그 동안 삼 년 가까이 갈릴래아 지방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군중을 상대로 가르치셨던 바를 당신 제자들에게 종합하여 요점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는 적대자들이 마련해 놓은 죽음의 올가미가 기다리고 있음을 예상하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으로서는 작정을 하고 꺼내 놓으신 말씀 보따리였습니다. “너희가 내 백성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면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내 백성 중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해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면 구원받을 대책이 없다. 그러니 네 손이나 발이 죄를 짓게 하면 그 손과 발을 잘라 ..

연중 제7주간 목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7주간 목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이 섬뜩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적잖이 당황하곤 합니다.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솔직히 나약한 인간이 죄짓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럴 때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주요 신체 부분들을 정말로 하나둘 잘라 버리라는 말씀이신지 묻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죄짓지 않아야 함’)를 과장되게 표현해서 듣는 이들에게 강렬한 효과를 주는 수사학적 방법을 택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손과 발을 잘..

연중 제7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7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 9,41-50: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41절) 자선을 베푸는 데는 부유하고 풍족한 사람들뿐 아니라,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다 그 몫이 있다. 인간은 누구도 남과 나눌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다. 나누는 것이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애정은 같을 수 있지 않겠는가?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것 자체가 자선이라고 하셨다. 자선은 못 하면서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42절) ..

스미르나의 교부, 폴리카르포

스미르나의 교부, 폴리카르포 야고 4,13-17; 마르 9,38-40 / 2022.2.23.;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이기우 신부 오늘은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스미르나 교회의 주교로서, 이레네오에게 정통 신앙을 가르쳐서 프랑스 리옹으로 파견한 폴리카르포의 기념일입니다. 본시 에페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북쪽 해안에 위치한 스미르나는 소아시아 일대를 두루 다니며 선교했던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한 다음에 요한이 활성화시킨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니까 폴리카르포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리스도교를 국제화시킨 바오로의 선교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직제자 요한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종합한 사도시대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게다가 바오로의 선교 철학을 본..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현대인들은 대개 바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정해진 시간표대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데 익숙합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표현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사회에서 정해진 시간을 잘 쪼개어 쓸 줄 아는 사람은 칭송을 받지만, 시간을 허투루 보내거나 낭비하는 사람은 한심한 취급을 받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죽음으로 한정된 시간이기에 그 가치는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시간이 주로 무엇을 얻으려는 데 소비되는지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현세에서 가지고 싶거나, 되고 싶거나, 누리고 싶은 것을 얻고자 사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주님의 선물임을 일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