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스미르나의 교부, 폴리카르포

수성구 2022. 2. 23. 05:30

스미르나의 교부, 폴리카르포

 

야고 4,13-17; 마르 9,38-40 / 2022.2.23.;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이기우 신부

 

  오늘은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스미르나 교회의 주교로서, 이레네오에게 정통 신앙을 가르쳐서 프랑스 리옹으로 파견한 폴리카르포의 기념일입니다. 본시 에페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북쪽 해안에 위치한 스미르나는 소아시아 일대를 두루 다니며 선교했던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한 다음에 요한이 활성화시킨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니까 폴리카르포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리스도교를 국제화시킨 바오로의 선교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직제자 요한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종합한 사도시대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게다가 바오로의 선교 철학을 본받아, 자신의 제자인 이레네오를 프랑스 리옹으로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 프랑스 복음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폴리카르포는 초대교회가 받은 풍요로운 전승, 즉 바오로의 카리스마와 요한의 카리스마를 모두 받아서 고대교회에 전해줄 수 있었고, 이 은총을 이레네오에게 전해줌으로써 프랑스가 유럽 복음화의 본산이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르코와 마태오 그리고 루카가 쓴 복음서를 참조하여 요한복음서를 쓰고 나서 요한도 로마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를 가서 일곱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묵시문학 형식으로 썼을 당시에 요한은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로 알려진 폴리카르포에게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안다. 그러나 너는 사실 부유하다. 또한 유다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서 중상을 받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인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네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이제 악마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묵시 2,8-11). 

 

  실제로 폴리카르포가 주교로서 사목하던 스미르나 교회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충실하기가 으뜸이어서 생명의 화관을 받을 만했고, 그는 사목활동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있어서도 충실하기가 으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현인으로 알려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실은 로마의 이교신을 믿으라고 강요하며 박해하던 때였습니다. 그러자 신앙을 증거하기로 결정한 스미르나 교회에서는 156년 2월 말에 12명의 신자가 체포되어 화형을 받아 치명하였는데, 폴리카르포의 최후를 기록한 스미르나 그리스도교 신자 순교록에 따르면, 그는 화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그의 몸을 피해갔기 때문에 로마 병사가 창으로 찔러서 치명당했다고 하며, 이때 그의 나이 86세였습니다. 

 

  이레네오는 폴리카르포가 신앙을 가르쳐서 프랑스 리옹으로 파견한 제자였습니다. 이레네오는 자신의 스승을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나는 복된 폴리카르포가 요한과 주님을 뵌 다른 이들과 어떻게 교제하고 그들의 말을 어떻게 인용하였는지, 또한 그들에게서 주님과 그분의 기적과 가르침에 관하여 무엇을 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폴리카르포는 말씀이신 분의 삶을 목격한 이들로부터 모든 것을 전해 듣고 모든 것을 성서와 일치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에우세베우스, 교회사 5, 20,6). 

 

  폴리카르포는 편지 한 통을 남겼는데, 의로움을 바탕으로 윤리와 도덕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을 촉구하였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지켜야 하며, 탐욕과 거짓 증언과 불의를 멀리해야 하며, 이렇듯 믿음에 행동이 따르는 덕을 쌓으려면 그리스도의 은총 안메 머물러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편지의 주제와 내용이 디모테오 전후서와 티토서와 비슷하고, 바오로의 다른 편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어휘와 문체, 역사적 상황, 공동체 안에서의 직무와 서열 그리고 신학적 내용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폴리카르포는 바오로의 이름으로 쓰여진 후기 사목서간의 실질적인 저자로 보기도 합니다(캄펜하우젠). 

 

  스미르나 교회가 기록한 순교록에 따르면, 폴리카르포는 화형으로 위협하는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고 찬미하올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성부여, 저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하시고 성자의 수난의 잔을 같이 할 수 있는 이 날 이 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진심으로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렇게 그는 요한과 바오로를 통해 전해진 초대교회의 계시 진리의 전통을 고대교회로 이어 주는 한편, 바오로가 꿈꾸었으나 실현하지 못했던 바 즉 스페인 선교 대신 프랑스 선교를 실현시켜 아시아의 서쪽 끝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서방 세계로 향하게 하는 기수가 되었습니다.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폴리카르포는 진정한 교부 즉 교회의 아버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