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수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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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어느 눈먼 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유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점이 좀 특이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눈먼 이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 뚜렷하게
보지 못하자 다시 두 눈에 손을 얹으셨고,
그제야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눈먼 이의 치유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어서 예수님께서도 애를 좀 먹으신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보다는 그의 시력이 단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문맥 안에서 바라볼 때,
제자들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곁에서
쭉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그분을 아직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어제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꾸짖으셨지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마치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가 예수님의 첫 번째 시도로
어렴풋이 보게 된 이야기에 빗대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눈먼 이가 뚜렷이 볼 수 있도록 다시 눈에 손을 얹으셨듯이,
제자들의 몰이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올바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보고는 있지만,
아직 어렴풋이 보는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뚜렷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당신 손을 우리의 두 눈에 얹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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