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12,46-50: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47절).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48절) 하고 반문하시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49-50절)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게 되면 누구나 예수님의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인간적인 혈연관계의 부모와 자녀 간에, 형제간의 정과 예의를 무시하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본분에 ..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세 가지 차원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세 가지 차원 미카 6,1-8; 마태 12,38-42 /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2022.7.18.; 이기우 신부 지난 주 금요일에는 안식일 논쟁과 관련하여 인간이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식인 제사와 기도의 기본 지향이 찬미와 감사, 속죄와 청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소통 방식의 지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간추려 발간된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 가르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 보면, 미카 예언자 역시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방식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 맺어야 하는 구원의 세 가지 차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12,38-42: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38절) 하며 유혹을 한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39절) 라는 말은 하느님을 유일한 신랑으로 알고, 사랑받는 배필로 사는 삶을 버리고, 즉 하느님의 말씀과 율법을 버리고 악과 거짓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간음하는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징밖에 없다 하신다. 요나의 표징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리를 꼬투리 잡는 이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이다. 믿음이 아니라 지혜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어리석음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연중 제16주일] 감추어져 있던 신비, 선포되는 말씀

[연중 제16주일] 감추어져 있던 신비, 선포되는 말씀 감추어져 있던 신비, 선포되는 말씀 창세 18,1-10; 콜로 1,24-28; 루카 10,38-42 연중 제16주일; 2022.7.17.; 이기우 신부 1. 오늘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백 살이 된 아브라함과 아흔 살이 된 사라에게 아들이 태어나리라고 전갈하셨습니다. 그가 일흔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와(창세 12,4) 많은 후손을 얻으리라는 축복을 받은 지(창세 15,4; 17,4) 스물다섯 해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시고자 그렇게 하셨습니다. 2. 그로부터 천칠백여 년이 흐른 후, 아브라함의 또 다른 후손인 바오로가 그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소아시아에 있던 아주 작은 도시 ..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 김인호 루카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특별한 묵상 거리를 소개합니다. 첫째, 마음의 과녁은 언제나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를 묘사하는 단어는 “듣고 있었다”입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 제자처럼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반면 마르타를 묘사하는 단어는 “분주하였다”입니다. ‘사방에서 마음을 끌어당김’을 뜻합니다. 예수님 앞에 머물러 있더라도 주변에 마음을 빼앗기면 분주할 수 있고, 반대로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들을 수 있습니다. 머무름과 분주함을 가르는 것은 태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아이를 돌보고, 일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습..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일: 다해 복음: 루카 10,38-42: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이 말씀은 제1독서의 아브라함을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주님을 자기 집에 맞아들인 마르타와 마리아에 관한 일을 보여주면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손님 접대의 의무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 손님 접대의 의미는 다른 사람들 안에서 주님의 모습 자체를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는 신앙의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이든 간에 모두가 다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지이다. 그러므..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미카 2,1-5; 마태 12,14-21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2022.7.16.; 이기우 신부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마태오는 이사야의 이 예언이 예수님께서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심성으로 올바름을 승리로 이끄셨던 생애에 적중한다고 보아 자신의 복음서에 인용하였습니다. 사실, 이사야 예언자는 당시 메시아를 기다리던 백성 일반의 기대와는 다르게, 장차 오실 메시아는 고난받는 종일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그 고난의 원인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라고도 내다보았습니다. 예언자로서 그가 지닌 상상력과 ..

희망의 여정 - 영원한 희망의 도반道伴이신 주 예수님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희망의 여정 - 영원한 희망의 도반道伴이신 주 예수님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2.7.16.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미카2,1-5 마태12,14-21 희망의 여정 -영원한 희망의 도반道伴이신 주 예수님- 참 놀라운 기적이요 신비입니다. 눈 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하는 삶의 기적, 희망의 표징들입니다. 초여름 곳곳에서 줄줄이 피어나는 초여름 정열과 순결의 청초한 꽃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여전히 세상에,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희망의 표징들입니다. 마침 어제 써놓은 '기다림'이란 시를 나눕니다. “백합꽃, 산나리꽃, 도라지꽃, 달맞이꽃 줄줄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나. 하늘 사랑은, 하늘 희망은 이렇듯 간절하고 강하고 질긴 것. 늘 거기 그 자리 때되니 곳곳에서 청초히 피어나..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12,14-21: 하느님께서 택하신 종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신다. 바리사이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의 손을 다른 손처럼 건강하게 해 주신 것을 보고 어떻게 예수님을 없앨까 모의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빛을, 바른길을, 생명을, 보물을, 진주를, 사랑 그 자체와 평화를 없애려 한다. 이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다른 곳으로 물러가셨다. 그것은 그들의 모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고쳐주시며 악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고쳐주시며,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셨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없으므로 그 일을 다른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이사 38,1-22; 마태 12,1-8 /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2022.7.15.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식은 제사와 기도입니다. 소통의 씨앗은 이미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환경을 조성해 주신 데 대한 찬미와 감사의 응답입니다. 소통의 열매는 앞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을 통해서 이루실 창조행위에 협력하려는 요청으로서 속죄와 청원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한편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도우심도 청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소통 방식이 찬미와 감사의 마음을 땅에서 하늘로 바치는 봉헌이라면, 두 번째 소통 방식인 속죄와 청원 행위는 은총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기를 바라는 요청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