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2,1-8 <변두리에 계신 주님을 사랑으로 모시기♣>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2,1-8 <변두리에 계신 주님을 사랑으로 모시기♣>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변두리에 계신 주님을 사랑으로 모시기♣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2,1-8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율법을 중요시했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유다 율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 왕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때 사제 아히멜렉에게 음식을 구걸하자 달리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던 사제는 성소의 제사떡을 다윗 일행에게 내어준 일화를 들어 가르치십니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과 그..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12,1-8: 내가 바라는 것은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안식일이란 깊은 의미를 보면, 하느님을 위한 것이기보다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일주일에 엿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면서,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 즉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쉬는 날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느님 안에 정신과 육체가 편안히 쉬는 날이다. 이 휴식은 그래서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살기 힘들다고, 하느님의 구원 은총에 대한 감사의 행위와 인간의 건강을 위하여 제정된 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을 위해 사는 것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까지도 잃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지금은..

영원한 안식처 - 주 예수 그리스도님 -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영원한 안식처 - 주 예수 그리스도님 -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2.7.14.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이사26,7-9.12.16-19 마태11,28-30 영원한 안식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쉼터가, 안식처가, 피신처가, 정주처가 없는 현대인들입니다. 딱히 머물 아늑하고 그윽한 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방황이요 혼란이며 불안하고 피곤한 삶입니다. 현대인의 궁극의 비극이자 불행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광야인생여정중 심신이 피곤하면 언제나 찾아 머물곳이 있는지요. 제 애송愛誦 좌우명座右銘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중 넷째 연이 생각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이,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이사 26,7-19; 마태 11,28-30 /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2022.7.14.;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보내어 당신 대신 복음을 전하게 하신 다음에 귀환 보고를 듣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께서 하셨던 대로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처럼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선포했고, 그 선포의 활동은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도와주는 한편 그들을 괴롭히던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치유와 구마의 사도직 활동의 결과로 제자들은 철부지 어린아이들처럼 복음을 순수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을 만났고, 그 성과를 예수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셨는데, 아마도 그들이 직접 스승을 만나보고 싶어서 제자들을 따라 왔던 ..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11,28-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28절) 율법을 지키려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악의 세력에 짓눌려 사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지를 못해 절망해 버린 사람들, 또한 자신의 약함과 죄의 짐으로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시는 말씀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29절) 예수님은 당신에게서 세상을 건설하는 법,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는 법,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이를 되..

하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

하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 이사 10,5-16; 마태 11,25-27 /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2022.7.13.; 이기우 신부 이사야 예언자는 거듭해서 경고하는 예언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와 백성들이 완고하게 회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남유다왕국의 멸망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이제는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 어이없게도 북과 남의 왕국 모두에서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어 버린 이 기막힌 역사를 해석하기에 이릅니다. 기도와 사색으로 얻은 역사 해석의 결과, 아시리아는 하느님께서 진노하시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고 쓰신 도구였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리아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른 채 자신의 힘만 과시했기 때문에, 아시리아 역시 하느님 심판을..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11,25-27: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25절) 당신에 관한 신비를 지혜롭다는 이스라엘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인 다른 민족들에게는 드러내신 아버지의 뜻에 대한 찬미이다. 우리도 세례를 받아 신앙인이 되었지만,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도 외면을 당할 것이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란 말은 창조계 전체의 주님으로 하늘은 하늘에 있는 모든 것, 땅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다. 예수께서는 이 일들을 다 하시고도 아버지께서 그 일을 하신 것으로 아..

이사야의 교훈, 카파르나움에 내린 경고

이사야의 교훈, 카파르나움에 내린 경고 이사 7,1-9; 마태 11,20-24 /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2022.7.12.; 이기우 신부 예언자 이사야는 우상숭배에 물들었다가 아시리아의 속국처럼 되어버린 북이스라엘 왕국의 운명을 상기시키며 유다 왕국도 우상숭배 풍조를 근절하지 않으면 똑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아시리아뿐만 아니라 이집트도 우상을 숭배하여 강대국이 된 세력이므로, 이사야는 두 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말라고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 예수님께서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에도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분의 소문을 듣고 질병이나 장애 또..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11,20-24: 회개하라 오늘 복음에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 사람들이 주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았지만 믿음도 회개도 하지 않는 것을 염려하여 애태우는 슬픔이 서린 탄식의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갈릴래아 지방에 있는 코라진과 베싸이다 지방은 띠로와 시돈, 소돔과 고모라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많은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를 거절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우리의 잘못된 삶으로 주님을 배척하게 된다면, 우리도 유다인들과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다. 하느님의 말..

진정성의 표지, ‘시원한 물 한 잔’

진정성의 표지, ‘시원한 물 한 잔’ 이사 1,10-17; 마태 10,34-11,1 /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일; 2022.7.11. 이사야는 유배 직전 남유다의 지도자들에게는 ‘소돔의 지도자들’이라고 불렀고, 백성들에게는 ‘고모라의 백성들’이라는 섬뜻한 호칭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주변 민족으로부터 배운 것은 많은 짐승을 잡아서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보기에는 이 제사 형식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이 제사를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였습니다. 이교 제사에는 많은 제물로 신의 분노를 잠재우고 축복을 바라는 기복적인 요소가 중요했지만, 유다교 제사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회개하는 진정성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언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