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이사야의 교훈, 카파르나움에 내린 경고

수성구 2022. 7. 12. 03:50

이사야의 교훈, 카파르나움에 내린 경고

이사 7,1-9; 마태 11,20-24 /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2022.7.12.; 이기우 신부

 

  예언자 이사야는 우상숭배에 물들었다가 아시리아의 속국처럼 되어버린 북이스라엘 왕국의 운명을 상기시키며 유다 왕국도 우상숭배 풍조를 근절하지 않으면 똑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아시리아뿐만 아니라 이집트도 우상을 숭배하여 강대국이 된 세력이므로, 이사야는 두 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말라고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

 

  예수님께서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에도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분의 소문을 듣고 질병이나 장애 또는 정신적 상처를 치유받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기꺼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가장 먼저 듣는 축복을 받았고 또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던 까닭에 앉아서 숱한 기적까지 목격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갈릴래아 주민들이 회개하기는커녕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분노하신 예수님께서는 이교인들이 살던 티로와 시돈보다, 심지어 타락의 대명사로 알려진 소돔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으리라고 꾸짖으셨습니다. 

 

  흔히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둘 곳조차 없다.”(마태 8,20)는 말씀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셨다고 막연히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 활동의 근거지로 삼으신 카파르나움에 그분의 집이 있었습니다(마태 4,13). 그러니까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선교 본부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주로 카파르나움으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가장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마르 2,1; 9,33). 그런데도 이를 목격한 그곳 카파르나움 주민들이 회개하지 않으니, 강력한 경고를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을 증거하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는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내면 사정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들이 속한 민족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이사야의 교훈이며, 특히 예수님께서 베푸신 각별한 관심과 배려에 보답하지 않고 기대를 저버리면 그만큼 더 가혹한 심판을 받으리라고 카파르나움에 내리신 경고입니다. 

 

  우리 교회가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을 간추려 보면, “제1천년기와 제2천년기 동안에 보편교회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온 동방 ‘제1교회’와 라틴 ‘제2교회’에 속한 지역교회들이 더 이상 주도권을 행사하는 다수 교회가 아니라 쇠퇴해가는 소수 교회로 전락하는 데 비해,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교회들은 이미 다수 교회로 탈바꿈하여 제삼천년기에는 보편교회 안에서 섭정(攝政)받는 교회가 아니라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3교회에 속하는 지역의 교회들은, 대다수 민중이 고질적인 빈곤과 만성적인 사회부조리로 말미암아 진통을 겪고 있고, 그 중에서도 아시아 교회들은 인구 대비 신자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이슬람교나 힌두교, 불교 등 다른 전통 종교들의 위세에 눌려 현상유지에 급급한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한 인접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교회들은 나라 사정과는 정반대로 현상유지도 힘들 정도로 침체일로에 처해 있는가 하면,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인 중국과 북한 교회들은 신앙의 자유를 크게 아니면 거의 전적으로 제약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이고 아시아적인 교회의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지난 70년대 이래 높은 경제 성장력을 이룩한 사회 안에서 이례적으로 경이적인 외적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500만의 신자들을 포용하면서 아시아 교회 안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공산 베트남과 함께 국민 대비 10%에 이르는 가장 높은 신자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한국교회는 아시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경제적 안정을 이룩하여 큰 비용을 들여 대규모의 본당, 회관, 학교, 병원, 복지시설 및 기타 시설을 다수 건립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가운데 본당 사목과 사회복지 사목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70년대 이래 인권이 제약되는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하에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및 민주화 실현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범국민적 신뢰를 받으며 사회적으로도 다른 어느 집단에 못지않은 높은 위상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며, 많은 신자들이 사회 주류층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등 다른 인접지역 교회에 비해 실로 괄목할만한 활력을 내외에 과시하고 있어서, 필리핀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한국교회와 같은 강력하고 드높은 위상을 사회적으로 확보한 지역교회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1980년 이래 교황청은 물론 1999년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 모였던 아시아 주교들은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의 본부 역할을 맞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삼천년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의 새 복음화는 민족 복음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내적 사목을 겨냥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으로 아시아 내지 인류 복음화를 자기 본연의 새 복음화 목표로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심상태).

역사적으로 제1처년기에 주도권을 쥐었던 동방 교회나, 제2천년기에 주도권을 쥐었던 라틴 교회가 이사야의 교훈과 카파르나움에 내린 경고를 귀담아들었더라면, 인류 복음화의 진도를 앞당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차대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명심할 말씀은, "먼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택하면 필요한 것들은 덤으로 얻어질 것"(마태 6,25-34)이라는 산상설교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