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진정성의 표지, ‘시원한 물 한 잔’

수성구 2022. 7. 11. 02:52

진정성의 표지, ‘시원한 물 한 잔’

이사 1,10-17; 마태 10,34-11,1 /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일; 2022.7.11.

 

  이사야는 유배 직전 남유다의 지도자들에게는 ‘소돔의 지도자들’이라고 불렀고, 백성들에게는 ‘고모라의 백성들’이라는 섬뜻한 호칭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주변 민족으로부터 배운 것은 많은 짐승을 잡아서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보기에는 이 제사 형식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이 제사를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였습니다. 이교 제사에는 많은 제물로 신의 분노를 잠재우고 축복을 바라는 기복적인 요소가 중요했지만, 유다교 제사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회개하는 진정성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언자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1,16-17) 하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사회적 행실을 의롭게 하라는 이사야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당시까지도 유다교는 달라지지 않았고, 제사만 형식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 전반이 다 그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사회적 행실을 바르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한편, 열두 제자를 사도로서 각지에 파견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말과 행실로 선포하는 사도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진정성 있게 회개하겠다는 표시로 간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베네딕도는 서방 교회에 성숙한 그리스도 신앙으로 살아가는 수도생활의 규칙을 확립하여 유럽의 정신적 스승이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민족에게 그리스도 신앙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그 진수가 알려지지 못했던 상황에서 베네딕도는 6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수도원을 수도원을 설립하여 수도생활을 통해 일일이 검증해 가며 확립한 규칙은 표준화된 수도생활의 질서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출현한 다른 수도원들과 함께 수도생활은 유럽 문명과 서방교회의 정신적 스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을 비롯한 수도자들은 “기도하며 일하라”는 수도생활의 규칙을 확립했으며, 그들이 수행했던 기도와 일이 그리스 사상에서 유래되어 유럽인들의 사상을 지배한 헬레니즘에 그리스도교의 혼을 불어 넣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었습니다. 헬레니즘이 인간 이성을 중시하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방식으로 문명을 건설하는 한 축이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유럽인들이 이룩한 이 문명에 신앙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또 다른 한 축이 되었는데 특히 “기도하고 일하라”는 규칙을 지키는 수도생활에 담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 유럽 문명을 인간화시키는 숙성제 노릇을 했습니다. 

 

  이렇게 서구인들의 언행과 서양 문화의 근저에 그리스도교와 헬레니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면, 한국인의 언행과 한국 문화의 근저에는 외래에서 들어온 유불선(儒佛仙)의 정신과 토착적인 무교(巫敎)의 영향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교리교육 의안, 11항).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준 종교적 요인 가운데에서도 특히 민족사의 초기에서부터 발생한 무교는 한국인들에게 인간의 삶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이룩되지 않고 ‘하느님’이라는 최고신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 생사화복(生死禍福)이 결정된다는 기초적 종교 심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평신도 의안, 135항). 그런데 불교, 도교, 유교 등 외래 종교가 지배적 종교로 자리잡으면서, 무교 신앙은 민간에 숨어 들어가게 되었고 내세관이 거의 사라진 대신에 초월적 힘으로 현세의 생사화복을 빌려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었으니, 이를 무속(巫俗)이라 하여 원초적 종교심성을 길러주었던 무교와 구분합니다. 

 

  그런데 민간의 종교적 심성 속에 스며 들어있던 무교의 하느님 신앙은 18세기 말에 이 땅에 들어온 천주교의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으니, 그 덕분에 초창기 선각자들은 이미 하느님 신앙을 종교적 심성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민중에게 천주교를 전하면서 굳이 하느님에 대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에 무속으로 변질되어 버린 하느님 신앙의 종교적 심성에 대해서는 식별과 정화의 필요가 컸습니다. 한국 교회는 초창기부터 현세의 길흉화복을 각종 신의 힘을 빌려서 조정해 보려는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무속행사에 대해서는 미신(迷信)으로 배척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와 더불어 한국인들의 근본적인 종교적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초월적 하느님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서 십자가와 부활의 혼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진정성을 회복하는 일이 우리에게 오늘날 남아있는 역사적 과제입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이 예수님께서 헤브라이즘의 형식적 종교생활에서 진정한 신앙생활로 회개하는 표지로 보신 것처럼, 베네딕도는 헬레니즘으로 치우칠 수 있었던 유럽 문명에 십자가와 부활 신앙의 진정성을 수도생활을 통해 불어넣어주었다고 하겠고, 이제 우리에게는 기복신앙의 유혹을 받고 있는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십자가로 부활하는 진정성 있는 신앙으로 숙성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