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밀과 가라지, 리더십의 지혜

밀과 가라지, 리더십의 지혜 예레 7,1-11; 마태 13,24-30 /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2022.7.23.; 이기우 신부 이스라엘의 히브리 문명권에서 태어난 복음과 그리스도 신앙이 당시 처음으로 맞닥뜨린 서방 이방인 문명권에 얼추 퍼졌을 무렵인 서기 1세기 경에, 사도 바오로로부터 이 신앙의 정수를 전수받은 그 제자들이 스승의 이름으로 히브리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문명의 경계를 넘어선 진리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오늘 복음에 나온 ‘밀과 가라지의 비유’도 하느님 말씀의 지혜 중 대표적인 하나입니다. 보통 예수님께서 비유..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 토요일 복음: 마태 13,24-30: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함께 있으면서 악의 폐해가 있지만 결국에 악은 가려져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자연 식물로서의 가라지는 결코 밀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악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인간은 언제나 회개하면 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은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두라고 하신다.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이다. 영혼 깊이 좋은 것이 뿌려진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 좋은 씨를 뿌린 이는 ‘말씀’이신 하느님이시다. 말씀이신 하느님은 이 세상에 계속 말씀의 씨를 뿌리신다. 이 말..

여인아, 왜 우느냐?

여인아, 왜 우느냐? 아가 3,1-4; 요한 20,1-18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2022.7.22.(금)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일곱 마귀를 달고 살던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루카 8,2). 그분 덕분에 일곱 마귀가 쫓겨나가는 극적인 체험을 한 후 막달레나는 그제껏 어두웠던 삶을 청산하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의 시중을 들어드리는 데에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막달레나는 여느 제자에 못지않게 그분의 가르침을 잘 알았으므로 그분께 대해서도 지극한 정성으로 충실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제자’입니다. 남성 제자들이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에도 그분이 돌아가시던 십자가 밑에 남아 있다가(마태 27,56) 무덤..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 토요일 복음: 마태 13,24-30: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함께 있으면서 악의 폐해가 있지만 결국에 악은 가려져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자연 식물로서의 가라지는 결코 밀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악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인간은 언제나 회개하면 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은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두라고 하신다.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이다. 영혼 깊이 좋은 것이 뿌려진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 좋은 씨를 뿌린 이는 ‘말씀’이신 하느님이시다. 말씀이신 하느님은 이 세상에 계속 말씀의 씨를 뿌리신다. 이 말..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 김인호 루카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에서 “너희”와 “저 사람들”이 대조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듣고 깨달으며 하느님 나라를 보고 이를 알아보는 이들이지만, ‘저 사람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인용된 이사야서의 말씀에 따르면, 이는 마음이 무디고 귀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입니다(6,9-10 참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은 그저 ‘쇠귀에 경 읽기’일 따름입니다. ‘선택적 집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죄로..

묻지 않는 사제들, 보고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제자들

묻지 않는 사제들, 보고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제자들 예레 2,1-13; 마태 13,10-17 /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022.7.21.; 이기우 신부 예레미야 예언자는 모태에서 빚어지기 전에 하느님께서 아셨다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신 분이시고, 민족들의 예언자로 성별된 존재를 넘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세워주신 분입니다. 공생활 동안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뿌리신 그분은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에는 뿌리지 않으셨고, 좋은 땅을 골라서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백 배도 넘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사제들이 “주님이 어디 계신가?”하고 묻지 않았다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두가이파 사제들도 주님의 뜻이 궁금하지도 않은 듯이 성전 권력에만 집착하여 하느님께는 관심도 두지..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13,10-17: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11절) 하신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원하고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신비를 알아듣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맞이할 마음이 없으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2절) 이것은 열정과 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넉넉히 주시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2절) ..

씨 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씨 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예레 1,1-10; 마태 13,1-9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2022.7.20.; 이기우 신부 하느님께서는 민족들의 예언자로 예레미야를 세우셨고,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로 하느님 나라의 비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오늘 말씀에 따르면, 오늘날 이 땅에 세워져야 할 하느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할 일꾼들도 말씀의 씨를 뿌려서 영혼을 살리는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거나, 또는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어서 곡식으로 육신을 먹여 살리는 농부들 가운데에서 부르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기적을 일으키셨고, 그 기적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그에 담긴 의미를 비유로 알기 쉽게 풀이해 주셨습니다. 양치기들에게는 ‘잃어..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13,1-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오늘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농부가 뿌린 씨앗을 새들이 쪼아 먹고 햇빛으로 타버리고 가시덤불이 숨을 막아 죽여 버리지만 많은 씨앗이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바라는 것은 결국 풍성한 수확을 바라보고 씨앗을 뿌린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준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4절) 여기서 길이란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로 가는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나그넷길 세상이다. 이 길에는 하느님의 것은 조금도 모르고 세상에 따라 사는 사..

하느님의 가족

하느님의 가족 미카 7,14-20; 마태 12,46-50 /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2022.7.19.; 이기우 신부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며,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교회의 구원은 부부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바탕으로 하느님 백성이 형성되어야 사회도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현실에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반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어서 가정에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 사목이 절실히 필요합니다(가정사목 의안, 1-3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의 가족이 되라는 말씀을 군중에게 전하셨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올곧게 실행했던 나자렛 성가정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