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하느님의 가족

수성구 2022. 7. 19. 04:18

하느님의 가족

 

미카 7,14-20; 마태 12,46-50 /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2022.7.19.; 이기우 신부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며,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교회의 구원은 부부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바탕으로 하느님 백성이 형성되어야 사회도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현실에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반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어서 가정에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 사목이 절실히 필요합니다(가정사목 의안, 1-3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의 가족이 되라는 말씀을 군중에게 전하셨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올곧게 실행했던 나자렛 성가정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아직 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아기를 잉태해야 했던 일, 약혼자였던 요셉이 이를 알고 괴로워하다가 천사의 개입으로 파혼의 위기를 넘긴 일, 나자렛 마을 주민들이 어린 예수를 사생아 취급하여 따돌림 당한 경험, 열두살 된 소년 예수가 성전에서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름으로써 아버지 노릇을 하던 요셉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사건 등이 그 체험의 배경인데, 이런 모든 어려움에서도 성모 마리아께서는 한결같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어머니께 대한 자신감에서 이런 가르침을 예수님께서 발설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려움을 안고 있지 않은 가정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만, 이러한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이 이 가정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거행하는 성품성사와 같은 품위로 혼배성사를 거행합니다. 이로써 맺어진 신자 가정은 하느님 가족의 기본 단위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조심스레 걸으며 대인관계에서 신의를 지키고 공정한 사회생활로써 신용을 쌓아가는 인간의 길은 가족 단위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가정 기도와 사회적 애덕의 실천은 가정 성화를 위해서도 매우 요긴한 조건입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당시에 조선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용인되고 있었지만, 교회에서는 일부일처제의 원칙을 관철했을 뿐만 아니라 부부 쌍방의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신분과 성별로 사람을 차별해 온 조선 사회에서 이 남녀동등의 진리는 만민평등과 함께 신자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인 기본 사유로 작용했던 사회적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축첩을 하는 이들은 천주교 세례를 받을 수 없었고 고해성사도 거절당했습니다. 이를 알고 미리 세례 전에 첩을 내보낸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부일처제의 혁명적 실천은 박해시기 내내 지속되었고, 결국 사회에 만연했던 축첩의 관행은 1930년대에 이르러 사회적 불법으로 규정되었다가, 해방 후 제헌헌법에 포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앞장섰던 이가 제헌의원이었던 장면 요한이었습니다. 

 

  남녀동등이라는 사회적 진리는 천주교 신자들 안에서 가정을 성화시키기 위한 디딤돌이었습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질서였고, 나아가 사회적 애덕을 가족이 함께 실천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자 질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의 문제가 온갖 범죄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고, 이는 가정의 현실이 성에 관한 모범이 되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람직한 성의 질서, 더 나아가서 성을 기반으로 한 가정의 질서가 발언권을 상실하고 성가정을 보기가 드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가족이 함께 하는 가정 기도와 사회적 애덕의 실천으로 저마다의 가정을 성화시키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혈연이 아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가족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언자 미카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대해서 저지른 죄악을 뉘우치며 백성을 대신하여 용서를 청했는데 이는 백성을 위한 중재의 기도였습니다. 사실 올바른 가정 자체가 성과 가정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중재 기도를 위한 제물이요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죄와 허물을 대속하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자들이 자신의 가정을 성화시키는 데에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고 이미 많은 남녀 신자들이 묵묵히 희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가정 성화를 위해 벌이는 남녀 평신도 신자들의 노력을 격려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특히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목표로 삼도록 권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희생을 자기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만이 아니고 위기에 처한 성의 현실과 흔들리는 가정을 위한 중재와 대속의 지향으로 하느님께 봉헌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성화를 원하더라도, 먼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를 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해 자기 가정 성화의 희생을 바치며 기도하고 도와주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성가정의 지향은 덤으로 주어질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