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2,1-8 <변두리에 계신 주님을 사랑으로 모시기♣>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수성구 2022. 7. 15. 05:42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2,1-8 <변두리에 계신 주님을 사랑으로 모시기♣>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변두리에 계신 주님을 사랑으로 모시기♣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 /마태 12,1-8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율법을 중요시했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유다 율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 왕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때 사제 아히멜렉에게 음식을 구걸하자 달리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던 사제는 성소의 제사떡을 다윗 일행에게 내어준 일화를 들어 가르치십니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과 그 인간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율법에 앞서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이 희생제사가 아닌 자비임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렇다고 결코 희생제사 의식을 단죄하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도 율법과 희생제사는 우리를 하느님과 보다 가까이 맺어주기 위한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보다 더 인간다워지고 하느님을 닮을 수 있어야 함을 바라신 것입니다.

오늘의 독서는 우리가 진정 지녀야 할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임을 알려줍니다. 히즈키야 왕은 범한 죄 때문에 죽어 마땅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엄격한 정의를 적용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왕의 열렬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마음을 누그러뜨리시고 그가 살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율법의 본질은 바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을 자신의 잣대와 편견으로 판단하고 인간을 도외시한 채 문자화된 율법 규정을 지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랑의 혼을 지니는 것입니다. 세라핌 박사 보나벤투라 성인은 말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알려고 하지 마라.”(Non voglio conoscerti, se non per amarti.) ‘사랑의 일차성’을 강조했던 이 성인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오늘날 이타적 사랑과 사랑에 기초한 인간 존중을 소홀히 여기는 가치 기준의 혼란은 악을 조장하고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영신 생활에 있어서도 살아가는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규칙과 목표를 어김없이 지키면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하느님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고, 예수님을 변두리로 내몰아버릴 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곧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신 사랑 자체입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나 자신의 영성생활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생활의 기준과 목표가 되고 한없이 자유롭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의 제도나 각종 법규들의 궁극적인 목적과 방향은 하느님 사랑에 바탕을 둔 인간의 존엄성을 살려나가기 위한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음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바로 그 사랑을 망각한 채 자기만족이나 자신이 세운 목표에 집착해서 살아간다면 존엄한 인간성도 나의 존재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사랑의 혼을 잃지 않고, 형식적인 규범과 제도의 준수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도록 했으면 합니다. 변두리에서 떨고 계신 예수님을 나를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으로 내 마음 한복판에, 우리 가정의 안방에, 나의 일터에, 만나는 사람들 한 가운데에 모셔오도록 합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