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수성구 2022. 7. 15. 05:46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이사 38,1-22; 마태 12,1-8 /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2022.7.15.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식은 제사와 기도입니다. 소통의 씨앗은 이미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환경을 조성해 주신 데 대한 찬미와 감사의 응답입니다. 소통의 열매는 앞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을 통해서 이루실 창조행위에 협력하려는 요청으로서 속죄와 청원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한편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도우심도 청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소통 방식이 찬미와 감사의 마음을 땅에서 하늘로 바치는 봉헌이라면, 두 번째 소통 방식인 속죄와 청원 행위는 은총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기를 바라는 요청입니다. 

 

  이집트 탈출 사건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하느님께서는 이를 잊지 않도록 창조와 해방이 이루어진 안식일에 하느님을 흠숭하며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유다교에서는 안식일이 되면 모든 생업을 금지하고 안식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한다는 것이 지나쳐서 매우 기계적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배고파서 남의 밀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일이나,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는 일이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나,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일도 안식일에 행하면 모조리 비판했습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도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좋은 일은 해도 된다고 하시며, 오히려 나서서 그 자비를 실천하는 행위를 제사의 제물처럼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논쟁 외에도, 안식일의 주인으로 자처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자체로써 안식일에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는 일상에서도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의 본질을 알려주셨습니다. 공생활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일로 제사적인 일상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로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에 의해서 신성모독과 성전모독이라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쓰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겪게 된 십자가상 죽음조차도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당신처럼 자비를 바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신 나머지 십자가 사건 전날에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미사성제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자비를 기억하여 감사드리면서 우리가 실천한 자비를 봉헌하는 자비의 제사이며, 성체를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적 실존을 살아가도록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40년 전에 제안된 사목의안에서도, “평신도들은 대체로 전례, 특히 미사성제의 교회적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전례를 신앙과 성세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신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한데 모여 하느님께 드리는 사회적인 흠숭 행위로 파악하기보다는 순전히 하나의 개인적 신심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평신도 의안, 55항)는 것인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 와서 더 심해지고 있어서 주일미사 참례율 저하라는 교세 통계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종교적 개인주의 내지 형식주의적 신앙생활에 젖은 결과(57항)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재건하며 현세 질서를 쇄신하는”(60항) 사회적인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일찍이 고대에 이제벨 왕비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희년법 전통에 따라 지키려던 나봇을 악랄한 방법으로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았던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에서 확인되듯이 우상숭배는 사회적 불의를 조장합니다. 반면에 히즈키야왕은 만연되어 있던 우상숭배 요소를 추방하고 신앙의 질서를 사회적으로도 확립하여 국력을 튼튼히 함으로써 아시리아의 산헤립왕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전례 정신이 희미해지고 세속화 현상이 만연되어 신앙이 쇠퇴한 여러 나라 교회의 실정을 감안하여, 2014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신자들에게 단호한 어조로 당부한 바 있습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또한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에 대해서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2014.8.15.). 교우 여러분, 이것이 자비의 사회적 실천입니다. 

 

  자비의 사회적 실천을 봉헌함으로써 미사성제를 합당하게 지내고, 기도에서도 찬미와 감사, 속죄와 청원으로 하느님과 원활하게 소통해야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비를 실천하지 못한 ‘궐함의 죄’를 속죄하고 사회적 자비 실천에 필요한 은총을 청하면, 백 배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