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3032

성탄을 축하합니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 찬미 예수님! 코로나19로 온 세상에 갑자기 삶의 브레이크가 걸린듯한 올 해의 성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간의 성탄은 그야말로 축제로 떠들썩한 성탄이었다면 올해는 작디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 모두가 고통과 가난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치 끝없이 지속될 것 처럼 달리고 또 달리던 인간의 욕망과 교만이라는 기차가 멈추자 비로소 내 테두리만이 아닌, 지구의 먼 곳 까지 보게 되는, 인간이 어디에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에 상관없이 결국 위급한 문제 해결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진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서로 엮여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성탄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은 어쩌면 질주하던 인간의 기차를 멈춰 세우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

현실에서 마음의 가난을 유지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마음의 가난을 유지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음의 가난을 유지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애초에 완전히 비울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마음의 욕구는 쉽게 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항아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항아리 안의 내용물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채워지듯이, 욕구도 하위 욕구부터 채워진 다음에야 상위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성장 과정에서 심한 욕구 결핍에 시달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마음 안에 불안감이 깔려 있어서 늘 허기진 아이처럼 포식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가난한 마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또한 심리적으로 상처가 많아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 역시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난한 마음을 가지기에 앞서 상처를 ..

완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 루카 12장 1-7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 정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존재는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창조주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벌거숭이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바로 우리 생명의 주관자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거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하느님 앞에 겸손합시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숨 쉬고 살 수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 규칙서에서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4,41)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둔 사람은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기도는 희망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

무죄한 피

무죄한 피 무죄한 피 루카 11장 47-54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독일 뮌헨 근교에 있는 ‘다하우 강제노동수용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나치 정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눈 밖에 난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이 수용소에 가두고 관리했습니다. 거짓 잣대로 사람들을 흑백으로 나누고, 흑으로 판단된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다루고 죽였습니다. 강제노동수용소는 그 자체로 침묵이었습니다. 낮은 신음 소리만 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와 죽어간 이 현장은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수용소 뒤편에 가르멜 수녀원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1941년에서 1945년까지 이곳에 수감되었던 뮌헨 대교구 요한네스 노인호이슬러..

꾸중을 감당하라

꾸중을 감당하라 꾸중을 감당하라 루카 11,42-46 다행이란 목마른 이가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한 것이고, 불행이란 너무 좋아 덤벙대다 그 우물에 빠져 죽는 것이랍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꾸중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다행입니다. 아니 그 꾸중은 행복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이에게는 불행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을 꾸짖듯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꾸짖으신다”(잠언3,12). “내 아들아, 너는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히브12,5). 오늘 복음의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루가11,42),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루가11,46)는..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감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감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감 루카 복음 11장 37-41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예전에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질타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칼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둠이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 내면에 숨은 이런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둠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무슨 변명이나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바리사이들처럼 겉만 신경 쓴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쉽게 허물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참된 예언자

참된 예언자 참된 예언자 루카 복음 11장 29-32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누가 나의 과거와 미래를 맞춘다면 그 사람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예언자는 앞날을 내다보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거짓 예언자’라고 합니다. 거짓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의 아비를 맹종하면서 이성을 잃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습니다. 반면 ‘참된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지금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은 과거나 미래의 하느님이 아니라 오늘의 하느님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알려주는 ..

강생의 신비

강생의 신비 강생의 신비 루카 복음 11장 27-2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늘 복음을 읽다 보면 루카 복음 전반부에 나오는 두 임신부의 만남을 떠올리게 됩니다. 위대한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을 모태에 배었던 엘리사벳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모태에 배었던 성모님의 만남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루카 11,27)라고 외친 군중 속의 그 여자가 이 만남을 보았더라면, 범상치 않은 두 여인의 잉태와 태중의 아들들에 대해서 역시 같은 말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엘리사벳은 이렇게 성모님께 이야기하지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위대한 인..

공동체

공동체 공동체 루카 복음 11장 15-26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예수님께서 유독 많이 치유하신 대상 가운데 귀머거리와 벙어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들, 말 그대로 공동체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와 벙어리들을 듣고 말하게 하신 것은, 이들이 무엇보다 단절의 벽을 허물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마귀(diabolos)는 편을 갈라 나누고 이간질하여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마귀의 힘을 빌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낸다는 몇몇 주장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신 것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연결하시는 성..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여정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여정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여정 루카 복음 11장 5-13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무엇보다 먼저 청하라고 하시지요. 이것은 우리의 바람을 하느님께 아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찾으라고도 하시지요.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더라도, 정작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찾으라는 이 말씀은 간절히 기도한 후에는 그 기도의 열매를 찾기 위해 행동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