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꾸중을 감당하라

수성구 2020. 10. 15. 03:08

꾸중을 감당하라



꾸중을 감당하라

루카 11,42-46


 

다행이란 목마른 이가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한 것이고,

불행이란 너무 좋아 덤벙대다 그 우물에 빠져 죽는 것이랍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꾸중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다행입니다.

아니 그 꾸중은 행복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이에게는 불행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을 꾸짖듯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꾸짖으신다”(잠언3,12).

“내 아들아, 너는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히브12,5).

오늘 복음의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루가11,42),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루가11,46)는

주님의 꾸중은 그들의 회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트집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높은 자리를 찾고

인사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남에게는 이러저러한 것을 요구하면서도

자기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불행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더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들은 의인처럼 보인 죄인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도 율법학자도 예수님의 꾸중을 들을 수 있었으니 그의 사랑 안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주님도 어찌하지 못하셨습니다.

따라서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면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육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누군가가 나를 꾸짖거든 행복한 줄 아십시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제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이는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잠언12,15).

꾸중을 듣는다는 것은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꾸중을 두려워 마십시오.

 

 

 

 

반영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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