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섬김의 리더십, 섬김의 영성

섬김의 리더십, 섬김의 영성 1코린 4,6-15; 루카 6,1-5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2.9.3.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인물은 전례 음악, 윤리와 신앙에 관한 저술 등으로 교황직의 이정표를 세운 그레고리오 교황입니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는 교회역사상 최초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자처하며 섬김의 리더십과 영성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이 호칭은 그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사제 직무를 위임하시며 내려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행동으로 보여주신 세족례의 모범을 깊이 묵상한 결과입니다. 스승이신 분이 제자들 앞에 종처럼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한낱 죄인들 앞에 종처럼 무릎을 꿇고 그런 섬김이 사랑임을 가르치셨습니다...

2022년 9월 3일 토요일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2년 9월 3일 토요일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제1독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

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2.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단식의 정신

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2.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단식의 정신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5,33-39: 단식의 정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을 보고,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33절) 유다인 중에는 진정 열심히 단식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단식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하는데,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하고 그 외는 먹을 것을 다 먹었다. 재를 지키는 것을 모두 드러내어 남에게 과시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하느님께서 주시리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희생과 단식이 하느님 앞에 죄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1코린 4,1-5; 루카 5,33-39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2022.9.2.;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와 새 부대라는 표현을 통해 당신의 새로운 리더십을 비유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도와 관행을 가죽 부대에, 의식과 실천을 포도주에 비길 수 있는데, 예수님 당시에 사두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리사이들에게 있어서 섬김의 리더십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저 낡아빠진 제도와 진부한 관행을 부여잡고 유지하면서 그 속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의식과 실천은 쥐꼬리만한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속사정을 알 길 없는 일반 백성은 형식적인 존경을 이들에게 보내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위선이 눈에..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너라 1코린 3,18-23; 루카 5,1-11 /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2022.9.1.; 이기우 신부 순교자 성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순교’란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의미했습니다만 현대에 들어서는 순교의 의미가 확장되어서, 본질적으로 신앙의 열매인 정의와 애덕을 실현하기 위하여 목숨이나 일생을 바치는 행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한 23세나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등 현대의 역대 교황들이 치명하지 않고서도 성인품에 오르신 이유입니다. 전통적인 의미로나 현대적인 의미로나 순교는 예수님을 본받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로 가르쳐 주시고 삶으로 보여주신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영원할 것인데”(1코린 13,13), 애덕은 으뜸이지만 신덕은 기본이며..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4,38-44: 시몬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심 복음에서 병의 치유는 하늘나라의 삶을 이 지상에서 이미 조금 체험하게 하여 주시고, 당신이 참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려주시는 행위이다. 예수께서는 시몬의 집에 가셔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가까이 가셔서 열을 꾸짖으시자 열이 가셨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으로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증거이다. 우리도 모두 죄의 열병을 앓고 있다. 성내는 열, 죄악과 불륜이라는 열병의 종류도 많다. 이러한 열병들을 주님을 가까이하면서 치유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사고 간청하자. 그러면 우리의 열병이 곧 가실 것이다. 우리가 머리와 가슴으로 ..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1코린 3,1-9; 루카 4,38-44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2022.8.31.; 이기우 신부 김대건 신부 탄생 2백주년이었던 지난 2021년의 묵상 주제는 "당신은 천주교인이오?"였습니다. 관장이 김 신부를 고문하면서 던졌던 이 물음은 오늘날 천주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천주교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천주교인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신성을 믿고 그 신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천주교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계시 진리는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시는 하느님을 가장 닮으신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 불교나 유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도우라고 가르치지만..

전삼용 요셉 신부 / 2022,8,30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이렇게 했더니 나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전삼용 요셉 신부 / 2022,8,30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이렇게 했더니 나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2년 다해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루카 4,31-37 이렇게 했더니 나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유튜브 채널 ‘책그림’에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한 오래된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다른 방향으로 뜁니다. 어떤 차를 보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것만 보면 이 사람은 분명 도망자입니다. 옷도 그렇게 입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신사의 멱살을 잡습니다. 분명히 그 사람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벽으로 밀어붙입니다. 이때 하늘에서 건축 자재들이 쏟아집니다. 이 사람은 사실 지나가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8. 30.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정말 그 말씀은 신기하구나.

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8. 30.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정말 그 말씀은 신기하구나.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4,31-37: 정말 그 말씀은 신기하구나. 나자렛에서 설교하신 다음 예수님은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마귀를 쫓아내 주심으로 당신의 말씀에 권위가 있음을 나타내셨다. 마귀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34절) 말하지만, 예수께서는 조용히 하라고 꾸짖으신다. 그것은 마귀가 진실을 말해도 거기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더러운 마귀가 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신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즉시 알아본다. 예수께서 거기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견디지를 못한다. 예수께서 가지신 능력은 인간뿐 아니라 마귀의 힘을 능가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역사하시..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코린 2,10-16; 루카 4,31-37 /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2022.8.30.; 이기우 신부 조상 대대로 하느님을 믿어온 이스라엘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들은 의외로 적었습니다. 오직 예언자들이 알려준 대로 메시아를 기다려왔던 소수의 아나빔들만 그분을 알아보았고 따랐을 뿐, 다수의 군중은 구름처럼 모여들어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기는 했던 다수의 군중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권위로 말씀하시는 것에 크게 놀라면서도 이를 듣고 회개하고 믿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그저 병을 고치고 마귀로부터 해방되는 기적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