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수성구 2022. 9. 2. 05:2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1코린 4,1-5; 루카 5,33-39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2022.9.2.;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와 새 부대라는 표현을 통해 당신의 새로운 리더십을 비유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도와 관행을 가죽 부대에, 의식과 실천을 포도주에 비길 수 있는데, 예수님 당시에 사두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리사이들에게 있어서 섬김의 리더십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저 낡아빠진 제도와 진부한 관행을 부여잡고 유지하면서 그 속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의식과 실천은 쥐꼬리만한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속사정을 알 길 없는 일반 백성은 형식적인 존경을 이들에게 보내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위선이 눈에 밟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을 듣고 지키되 삶과 실천은 따라 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나 관습적으로 획기적인 개선을 기하기는 애시당초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도와 관습을 낡은 가죽 부대에 비유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식과 실천 또한 묵은 포도주에 빗대시면서, 당신의 새로운 섬김 양식을 새 포도주로 삼아서 아예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관습을 창출하고자 시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제도나 사회 분위기가 받쳐 주지 못할 때는 기회를 포착한 개인이 돌파해야 합니다. 그가 돌파해 내는 카리스마로 이 의미를 알아차린 소수에게 가능성을 나누어주어야 하고, 그러면 새로운 제도와 관습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서 역사 안에 출현했습니다. 새로운 섬김의 카리스마와, 섬김의 양식을 위해서 말이지요. 새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다는 것은 그런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복음적 리더십을 본받은 인물이 사도 바오로입니다. 그가 자신의 사도직과 선교활동을 통해서 보여준 바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겠다는 정확한 주체성으로 살고 일했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서 그들을 섬기되 원칙을 고수하며 섬겼고, 원칙을 고수하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섬기듯이 다스렸습니다. 섬기듯 다스리고, 다스리듯 섬기는 새로운 리더십이었습니다.

 

  그가 구현한 이 새로운 리더십은 자기 나름대로 예수님의 삶과 활동을 깊이 숙고한 결과로서 나온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의식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당신이 메시아이시라고 내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으며, 오직 찢기고 멍든 사람들을 섬기시러 갖가지 기적을 일으켜서 도와주셨어도 이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기에 둔감하고 어리버리해서 답답하게 믿는 제자들에게는 추상같은 어조로 꾸짖으셨고,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는 도무지 믿음이 없던 무리들에게는 차라리 십자가 희생으로 믿음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투철한 삶과 일관성 있는 활동에서 바로 사도 바오로가 뒤따른 새로운 리더십, 즉 섬기듯 다스리고 다스리듯 섬기는 복음적 리더십이 역사상 처음으로 구현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목표하셨던 하느님 나라 복음의 실체가 파스카 과업임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요청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두가이나 바리사이처럼 갑질을 일삼는 것도 죄악이지만 그렇다고 그저 다른 이들보다 못한 을(乙)의 위치에서 갑질을 당하는 게 능사(能事)도 아니었다고 그는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섬김을 통해서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것, 즉 자신의 섬김으로써 사람들의 공동체화와 세상의 복음화가 진척되어 파스카 과업에 도움이 되어야 실질적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카리스마가 중요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사도로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알아서 주체적인 원칙을 세워 선교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고생스럽게 교우들을 섬겼던 그는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찾아다니고, 천막을 손으로 만드는 거친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을 했으며, 형식적인 세례를 베풀기보다는 인격적으로 감화를 주어 믿도록 했고, 함께 있을 때에는 자신의 생활로 감화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떠나온 후에도 필요하면 편지를 써서 보내고 이 편지들을 다른 공동체들의 기도 모임에서 돌려보게 해서 소통이 원활한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네 가지 선교활동 원칙이 그가 사람들을 섬기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야단을 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먼저 사과를 하여 화해를 추구하기도 하는가 하면 추상같이 단죄를 하기도 하면서 공동체를 추스르는 카리스마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인격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섬김의 카리스마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보여주신 실천의 핵심을 꿰뚫어본 바오로의 사도적 지혜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