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침상 밑에 놓겠느냐?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침상 밑에 놓겠느냐?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할 곳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이 아니다. 빛이신 예수님께 두어야 할 우리의 마음이다. 빛은 막을 수 없다. 서로를 비추는 사랑의 빛이 우리 신앙의 정체성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빛이 있다. 마음을 쏟아야 할 사랑의 빛이다. 마음을 모아야 할곳 또한 사랑이신 주님이시다. 우리가 가진 것은 마음이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도 마음이고 빛으로 비추어주는 것도 마음이다. 서로를 비추어주는 등불의 관계가 건강한 신앙의 관계이다. 빛의 길을 걷게하시는 주님이시다. 마음이 닮아야 할 것은 서로를 환하게 비추는 빛이다. 마음을 주님께 활짝 열어드린다. 오늘의 우리마음을 빛이신 주님께 봉헌한다. 마음을 빛이신 주님께 두는 마음의 새날이다.

하느님,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하느님,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2사무 11,1-17; 마르 4,26-34 / 2022.1.28.; 성 토마스 아퀴나스; 이기우 신부 오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기념일입니다. 그는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했던’(집회 15,5. 입당송) 사제 학자로서, ‘뛰어난 성덕과 거룩한 학문의 본보기’(본기도)였습니다. 교회의 두 번째 천년기가 시작된 시기에는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교회가 십자군 전쟁(1095~1291)을 일으켰는데, 뛰어난 성덕을 지녔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불행한 사태를 학문적으로 수습하였습니다. 13세기에 그가 쓴 「신학대전」(神學大典)은 이 십자군 전쟁으로 유입된 앞선 이슬람 문명이 전해준 보물 창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이용하여 근세와 현대를 준비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았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르 4,26-34: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사람은 모른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좋은 뜻을 품는다면, 그것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씨가 어떻게 싹이 터서 자라는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 즉 자기 안에 심어져 자라나고 있는 덕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직 헤아릴 길이 없다. 땅이 은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열매를 맺듯이, 인간도 그렇게 스스로 선행의 열매를 맺는다. 땅이 처음에는 싹을 트게 하고 줄기를 내고 그다음에는 이삭을, 또 그다음에는 이삭에 가득 달린 낟알을 낸다. 아직 약한 싹이지만 좋은 시작이다. 우리 마음에 심어진 덕이 선행으로 발전할 때, 줄기에서 이삭이 패는 것이다. ..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2사무 7,18-29; 마르 4,21-25 / 2022.1.27.;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다윗이 왕이 되리라고 예언한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주었지만(1사무 16,13), 그 후에도 사울이 임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던 40년 동안 다윗은 사울의 부하로서 충성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공을 세워 백성들의 민심을 얻은 가운데, 사울이 전쟁통에 요나탄과 함께 전사하자 백성 지도자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궁정 예언자 나탄은 다윗이 시작한 유다 지파의 왕조는 사울의 벤야민 지파와 달리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리라는, 이른바 ‘시온의 계약’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2사무 7,5-16). 그러자 다윗은 하느님께 찬송의 노래를 읊어 올렸습니다: “..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2티모 1,1-8; 루카 10,1-9 / 2022.1.26.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이기우 신부 오늘은 성 티모테오와 성 티도의 기념일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도 바오로가 선교여행 중에 만난 이들 가운데 눈여겨보았다가 선교의 협력자로 삼아서 제자 훈련을 시킨 후 에페소와 크레타에 파견한 선교사입니다. 이 두 사람말고도 사도 바오로의 협력자였다가 제자가 된 이들은 여럿이 더 있는데, 루카(콜로 4,14), 에바프로디토스(필리 2,25), 실라스(사도 15,40), 마르코(필레 1,24), 아리스타코스(필레 1,24), 데마스(필레 1,24),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로마 16,3) 등이 그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개척선교 노선은 이들 협력자와 제자..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복음: 루카 10,1-9: 추구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티모테오는 사도 바오로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 아마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의 첫 선교여행 중에 개종한 것 같다. 티모테오는 바오로와 같이 두 번째 여행과 세 번째 여행을 함께 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그에게 여러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겼다. 마케도니아의 테살로니카와 코린토의 공동체들을 맡겼다. 사도는 그에게 신약에 정경이 된 적어도 두 서간을 남겼다.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가 첫 번 감옥에 있는 동안 가까이 있었고 그 후에 에페소에서 주교직을 행하였다. 감옥에 갇힌 바오로는 두 번째로 로마의 가는 길에 동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바오로 사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주교 학자 기념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주교 학자 기념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마르 3,22-30: 성령을 거슬려 지은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하느님의 은혜로 인정하기보다는 마귀의 짓이라고 헐뜯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23절) 하신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25절) 이 말씀은 성령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성령께서는 당신 자신을 거슬러 갈라서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모아들이신 사람들이 갈라지지 않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서로 맞서 갈라진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해진 사람들 안에 사신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

연중 제3주일 : 다해 - 하느님의 말씀 주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3주일 : 다해 - 하느님의 말씀 주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3주일 : 다해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 말씀을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삶 속에 실천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구원적 삶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항상 나에게 있어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느헤미야서는 에즈라가 바빌론 귀양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하느님의 말씀, 법은 공적으로 백성들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일어서고, 손을 쳐들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여’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일 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3,20-21: 예수님 친척들의 몰이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또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의 가족들이다. 그것 때문에 어떤 때는 아무런 부담 없이 농담하고, 또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가족들이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으므로 이해해 주리라 믿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많이 체험한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업적을 통하여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고, 이것을 본 군중들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 행적들을 비하하며 악령의 힘으로 기적..

성녀 야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녀 야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일치 주간)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녀 야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마르 3,13-19: 제자들을 부르셔서 당신 곁에 있게 하시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여정을 시작하시며 열둘을 부르시어 당신의 모든 제자 가운데 그들에게만 사도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주셨다. 예수께서 이제 그들과 깊은 친교를 나누며, 당신이 하시는 일에 협조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즉 공생과 파견이라고 할 수 있다(6,6-13). 파견된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대로(1,34.39) 복음을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열두 사람을 가려 제자단을 만드신 것은 그분과 함께 살고, 함께 사귀고 또한 그분이 하신 것같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즉 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