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4569

[성가정 축일]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성가정 축일]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집회 3,2-14; 콜로 3,12-21; 루카 2,41-52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021.12.26.(일); 이기우 신부 ⒈ 오늘 교회가 거행하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가정이 이를 본받아 가정의 성화를 이루려는 지향으로 지내는 축일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한 주간 동안 우리는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마침 이때가 한 해를 마치고 새 해를 시작하는 연말연시 기간이므로, 지나간 한 해 동안에 가정이 받은 은총에 감사를 드리고 새로운 한 해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소..

성가정 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가정 축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가정 축일: 다해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다.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매우 중요한 곳이다. 우리는 항상 서로 간에 사랑의 막을 쳐야 한다. 가정 안에서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사랑하기를 배우지 못한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가정교회는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인식과 또한 생명과 인간 품위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1979.1.28. 멕시코 푸에블라에서)라고 하셨으며 그 때문에 가정 사목에 중점을 두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의 가족관계가 사랑이라는 기본법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느님께서는 부모에게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자녀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사랑을 ..

[성탄 대축일] 한처음이자 마지막인 창조자 예수

[성탄 대축일] 한처음이자 마지막인 창조자 예수 한처음이자 마지막이신 창조자 예수 이사 52,7-10; 히브 1,1-6; 요한 1,1-18 2021.12.25.; 주님 성탄 대축일; 이기우 신부 ⒈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이유 오늘은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주님으로 믿는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조성되던 한처음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창조해 주신 분이시므로 우리가 기뻐합니다. 둘째는 그렇게 첫 번째 창조에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지어내신 이 세상을 사람들이 죄악을 저질러서 사탄이 지배하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어 사탄 지배의 세상을 종식시키러 오셨으므로 우리가 축하합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성탄 대축일 낮 미사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탄 대축일 낮 미사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어젯밤 미사의 전례는 하느님 아들의 탄생 신비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으로 차 있다고 한다면 오늘 낮 미사는 기쁨 외에 서정적이고도 풍부한 신학적 내용으로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본기도는 인간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아들을 통해 이미 신성(神性)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신학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복음: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14절)는 말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우리와 같은 나약성, 죽음, 한계성, 죄와 더불어 존재해야 하는 일반적 의미보다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항구한 ‘거처’를 실현하셨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

예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예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그리스도께 관한 모든 것은 신비이다. 오늘 우리는 그분이 사람이 되심을 지내고 있다. “사람이 되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이다. 왜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는가 말이다. 성경은 이 사람이 되신 신비를 여러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만,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는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한 아기”는 “임마누엘”(이사 7,14)과 같은 아기이며, 이 아기를 통하여 놀라운 해방과 평화와 정의의 왕국이 세워진다고 한다. 이러한 왕국은 어두움 속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비쳐오는 “큰 빛”과 같다. 그 “아기”의 탄생은 그 아기가 곧 정..

12월 24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2월 24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2월 24일 복음: 루카 1,67-79: 즈가리야의 노래 성령께서는 즈카르야를 사로잡으시어 아홉 달의 침묵을 깨고 요한이 할례 받던 날, 예언하게 하셨다. 즈카르야는 노래 첫머리에서 장차 요한이 준비할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68-69절) 주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찾아 의롭게 만들기로 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뿌리 깊은 병인 교만을 치료하고자,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듯 우리를 찾아오셨고, 당신의 겸손을 그 본보기로 보여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말라 3,1-24; 루카 1,57-66 / 2021.12.23.(목); 이기우 신부 대림절은 형식상 메시아를 기다리는 때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메시아 백성이 되고자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세례자 요한은 기준이자 길잡이가 되어준 인물입니다. 독실한 유다인으로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모두 메시아를 오랫 동안 기다려온 아나빔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늙도록 아이가 없어 그저 기도만 열심히 했던 부부인데, 그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들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메시아를 준비하는 위대한 역할을 수행할 큰 예언자로 점지해 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작은 징표가 있었으니, 너무도 큰 이 은총에 대해 놀라운 나머지 믿기 어려워 했던 즈카르야를 출산이 ..

12월 23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2월 23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2월 23일 복음: 루카 1,57-66: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할례 교회는 성탄 바로 전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배치하여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제시하고,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고리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정점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할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며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늙은 엘리사벳은 마지막 예언자를 낳았고, 젊은 처녀 마리아는 천사들의 주님을 낳았다. 아론의 자손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사 40,3)를 낳았고, 다윗의 자손은 권능의 하느님을 낳았다. 아이 못 낳는 여자는 죄를 탕감하는 사람을 낳았지만, 동정녀는 죄를 없애시는 분(요한 1,29)을 낳았다. 엘리..

성모찬송과 공동선 가치

성모찬송과 공동선 가치 1사무 1,24-28; 루카 1,46-56 / 2021.12.22.(수); 이기우 신부 천사의 방문을 받은 후 엘리사벳을 찾아가 뜻밖에도 분에 넘치는 인사를 받으신 마리아께서는 역시 하느님께 찬송을 드리는 인사로 화답하셨습니다. 천사의 예고를 받고 놀랐던 충격과 불안한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메시아를 기다려온 신심만이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화답 속에는 엘리사벳이나 마리아 같이 이스라엘 안에서 깊은 신심으로 메시아를 기다려온 아나빔들의 믿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강성한 민족들 가운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약소 민족으로서 유일하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또 그토록 오랫동안 그분의 각별한 보호를 받았으면서도 그분의 길에서 엇박자를 내 왔던 이스라엘 민족의 그 슬픈 역..

12월 22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2월 22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12월 22일 복음: 루카 1,46-56: 마리아의 노래-하느님 찬미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뛰니”(47절) 마리아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 영혼과 마음으로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은 하느님 자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이다. 이 하느님의 모습은 우리의 일과 생각과 말로 키울 때, 우리는 올바로 주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다. 우리의 모습 안에서 그분은 더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게 된다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주체가 되신다는 말이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48절) 이 말은 마리아의 겸손을 나타내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