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225

잡초 뽑기

잡초 뽑기 어느 교우가 사제관 뒤뜰을 잘 정리해 주어 아침 저녁으로 시간날 때 장미꽃이나 채소에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아준다. 사제관 뒤뜰에는 장미, 다알리아, 개나리, 사과나무가 심겨져 있고, 텃밭에는 고추, 상추, 부추, 청경채, 토마토, 가지, 오이가 심겨져 있다. 이곳은 물이 귀하고 태양이 뜨거워 모든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니 인간이 신경을 써서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이곳 사막은 참 물이 귀해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물을 주고 나면 비둘기나 까마귀나 참새들이 날아든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갈증을 느끼기에 물냄새를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날아든 비둘기나 까마귀는 날씬하다. 내가 서울 장충단 공원이나 LA에서 본 비둘기는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쩌서 잘 날지도 못하던데, 여기 새들은 사막이라 먹을 게 ..

희망의 기도 2021.03.18

지성과 감성

지성과 감성 지성은 건강한 감성으로 온전해진다. 반드시 건강한 감성이어야 한다. 감성의 색깔이 너무 다양하고, 아무리 느낌이 윤리성이 없다 하더라도 통제 불능의 표현과 행위는 죄악을 초래하기때문이다. 지식은 사람을 차갑게 만들고 감성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 지식은 거리의 인식이다. 우리가 무엇을 알려면 그곳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하나가 되고 한몸이 되어 매몰되어 있으면, 객관적 실체를 보지 못한다. 산의 생김을 알려면, 산속에 있으면 안되고, 산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 거리로는 떨어져 있어야 하고, 온도로는 냉각을 시켜야 형태가 나온다. 사람은 차가워지면, 지정의(知情意)가 따로 움직여 냉랭한 인격으로 바뀔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본인도 주변도 불행해 질 수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 다른..

희망의 기도 2021.03.17

진정한 이웃

진정한 이웃 오늘 복음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인데, 루카 복음 10장 26절의 '이웃'이라는 희랍어 단어는 '플레시온'(pllesion; neighbour)이다. 유다적 어법을 따르면, '이웃'이란 '동질성을 가진 집단' 이란 뉘앙스를 나타낸다. 유다인들은 이 단어를 같은 동족, 같은 종교권의 사람들, 혹은 같은 유다인 집단을 가리키며 사용했다. 배타적인 바리사이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을 이 단어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예수께서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진정한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율법학자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라고 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대해 J.Jeremias는 율법학자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

희망의 기도 2021.03.11

너의 기도를 즐거워하신다

너의 기도를 즐거워하신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무조건 묵주기도부터 먼저 바치는 습관이 생겼다. 사막에서의 아침의 첫 시간, 가장 좋은 시간을 사제관 뒤뜰 로사리오 동산을 거닐며 좀 많이 바쳐 놓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이 생겨났다. 감사, 찬양, 흠숭의 지향과 교회 선익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은사와 위타적 지향을 가지고, 묵주기도의 신비(현의)의 장면과 말씀들을 떠올리면서 입으로는 경문을 왼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경문을 읽는 것도, 손가락으로 묵주알을 돌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몇 번이고 건성으로 하다가 놓치거나 잊어버려서 반복할 때가 많다. 그래서 또박또빅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파티마를 두번 째로 다녀오고, 파티마의 메시지를 다 정리해서 LA에서 푸른 군대 회원들을 위해 피정 강..

희망의 기도 2021.03.06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며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며 우리 가톨릭 교리 중에 늘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고백하지만,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 (Communio Sanctorum)교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거룩한 이들의 친교'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교리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거룩함과 선이 성령을 통해 교회의 공동 자산이 되게 하며 그 모든 지체에 전달되는데, 신앙과 성사, 은사와 사랑, 공동 소유와 같은 영적 자산, 즉 '거룩한 것들의 공유'가 이루어진다. 또한 근본적으로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지상에 있는 교회가 죽은 후 정화 과정을 겪고 있는 영혼들과, 하느님 나라의 복을 누리고 있는 천상 성인들과 함께 '거룩한 이들의 친교'가 맺어지고 있다. 우리 가톨릭의 상장례 예식과 연도, 염습들과 장지까지의 동행은 루..

희망의 기도 2021.03.01

고통을 당할때 어떻게 처신하는가

고통을 당할때 어떻게 처신하는가 완덕의 진수는 모든 일에서, 그것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간에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다. 좋은 일에는 비록 죄인이라도 하느님의 뜻에 맞추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고 고통스러울 때야말로 성인다운 덕이 있어야 하느님의 뜻에 우리를 맞출 수 있다. 고통을 당할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는가를 보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저울질할 수 있다. 아빌라의 요한 성인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역경에 처해 있을 때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하고 한 번 기도드리는 것이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수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더 값지다."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

희망의 기도 2021.02.12

하느님을 신뢰하자

하느님을 신뢰하자 고통 중에서 하느님을 신뢰하기 위하여 성서의 진리를 되새기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성서 인물들이 고난 중에서 어떠한 태도로 하느님을 믿고 의지했는가를 되새기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을 신뢰하자. 시편 저자는, "올곧은 사람은 불행이 많아도 주님은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신다." (시편34,19)고 노래한다. 여기서 '건져 주신다'라는 말에는 '무장시키다. 장비를 갖추다.'라는 의미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중에서도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도록 무장시키신다. - -

희망의 기도 2021.02.11

진정한 감사

진정한 감사 조건부 감사는 하느님이 무엇을 주었기 때문에, 즉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감사이다. 이 조건부 감사는 소유에 비례하는 불평을 낳는다. 자신이 바란대로 되지 않고, 소유를 잃어버리거나 주어지지 않을 때는 여지없이 불평, 불만을 쏟아 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감사, 조건부 감사의 약점이다. 이것은 아담의 인간성을 가진 우리 모두의 본성적 감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소유(to have)가 아니라 존재(to be)에 따른 감사이어야 한다. 주든 안주든, 주든 아니면 준 것을 앗아가고 잃어버리고, 더 안 좋은 것이 오더라도, 하느님께서 내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목적이시며 참 부모이시기에, 결코 나를 버리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으시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과 섭리로 받아들이는 감..

희망의 기도 2021.02.10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10월 4일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1182~1226; 44세로 타계) 기념일이지만, 원래 돌아가신 날은 1226년 10월 3일이다. 미국 보스톤 한인 성당의 성장 세미나를 지도하러 왔다가 잠깐 짬을 내어 보스톤 전경을 다 볼 수 있는 프루덴셜 타워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그 비싼 건물 안에 성 프란치스칸의 채플이 있어 들어가 제단에 현시된 성체 대전에 기도하고 나왔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매일 미사의 영성체때마다 부르는 성인 성녀들 축일은 꼭 이렇게 챙겨 주시는 것 같다. 예수님의 모습을 출생부터 죽음까지 가장 닮았다는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아침에 그가 돌아가실 때 형제보고 읽어라고 했던 요한 복음의 예수 수난기와 그가 노래했던 시편 42장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

희망의 기도 2021.02.07

진정한 이웃

진정한 이웃 오늘 복음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인데, 루카 복음 10장 26절의 '이웃'이라는 희랍어 단어는 '플레시온'(pllesion; neighbour)이다. 유다적 어법을 따르면, '이웃'이란 '동질성을 가진 집단' 이란 뉘앙스를 나타낸다. 유다인들은 이 단어를 같은 동족, 같은 종교권의 사람들, 혹은 같은 유다인 집단을 가리키며 사용했다. 배타적인 바리사이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을 이 단어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예수께서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진정한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율법학자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라고 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대해 J.Jeremias는 율법학자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

희망의 기도 2021.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