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시노달리타스, 소통-경청-공동합의

수성구 2022. 4. 30. 02:05

시노달리타스, 소통-경청-공동합의

 

사도 6,1-7; 요한 6,16-21 / 2022.4.30.;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으로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자 군중이 억지로라도 임금으로 모시겠다고 쫓아오는 바람에 이들을 피해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가 겪으신 일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따로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호수 건너편에 가 닿기 전에 날이 어두워지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이는 바람에 호수 한가운데에서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 바람은 북쪽 헤르몬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과 서쪽 지중해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마주치는 맞바람이었습니다(마르 6,45-52). 새벽이 되자 더욱 거세어진 바람에 밀려 배가 뒤집히거나 또는 높은 파도로 인해 스며든 물이 가득 차서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마태 14,22-33). 

 

  며칠째 군중을 가르치시느라고 힘드셨던 데다가 큰 기적까지 일으키셨던 예수님께서는 홀로 조용히 기도하시고자 하셨더랬습니다. 그래서 군중도 제자들도 다 돌려보내시고 헤르몬 산에 올라 하느님께 기도하신 것인데 문득 제자들이 처한 위험이 감지되셨나 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은 매우 다급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타고 가실 배도 없었던 형편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구하러 서둘러 가시느라고 물 위를 걸어가서 구해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물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인 줄 착각하기도 했지만(마태 14,26),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하고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분이 배에 오르시자 그렇게 거세게 불던 바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마르 6,51). 기적 같은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때는 맞바람 때문에 노를 젓기가 그렇게 힘들더니(마르 6,48), 그분이 함께 계시니까 노를 젓지 않았는데도, 배가 어느새 제자들이 가려던 곳에 슬그머니 가 닿았던 것입니다(요한 6,21). 

 

  오늘 독서가 전하는 상황의 배경이 이러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은 유다 최고 의회로부터 툭하면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매질도 당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 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사도 4,20)고 버티면서,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도 5,29) 하고 항변했습니다. 이렇게 신생 교회가 유다교로부터 대대적인 박해를 받고 있던 와중에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군중 앞에서 태생 불구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고, 이 기적을 목격한 군중과 소문을 들은 이들을 합해 무려 5천 명 이상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하는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며, 몹시 분주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동체 외부에서 격렬한 박해 속에서도 적지 않은 선교적 성취를 이루고 있던 와중에, 공동체 내부에서는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이 식량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은 일로 해서 불평이 터져 나오는 일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사도 6,3)을 뽑아서 신자들에게 예수님 말씀도 가르치고 식량 배급을 비롯한 공동체 내부의 질서를 전담할 부제 직무를 신설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조치는 사도들이 예수님 없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공동으로 합의한 첫 결정이었습니다. 이로써 교회의 내부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통이 수립되었습니다. 서로 소통하고 진정성 있게 경청하며 공동으로 합의하는 ‘시노달리타스(Synodaltas)’ 즉, “함께 걷는 길”의 전통입니다. 

 

  박해에 대한 대책이나 복음을 선포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에 있어서나, 내부의 갈등이 생겼을 때 소통을 원활하게 정상화시킴으로써 갈등을 해소시키는 대내적인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회 전통이 이 시노달리타스입니다. 이야말로 인격적이고 복음적인 민주주의 질서로서 세상의 빛을 비출 수 있을 중요한 표지입니다. 그러자면 교회 내 지위나 처지를 막론하고 누구나 예수님의 현존을 청해야 합니다. 그 표지는 말씀과 성찬과 사랑의 섬김이라는 세 가지 기본 양식에 더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성령이 주어져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서로의 신앙 감각을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교회의 목적지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체질 개선이라는 두 가지 필수 양식입니다. 

 

  빵이 늘어난 기적이나 물 위를 걸은 기적, 또는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지는 자연현상의 기적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려진 이 기적 현상이 부제 직무를 신설한 사도들의 행위와 맞물려서 교회에 관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것은 사제든 부제든 교회의 직무는 예수님의 현존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는 점이고, 그래야 성령께서 이끄시는 지혜로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우리 교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무기력한 체질을 개선하고 당면 과제나 장기 목표를 우리 교회가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고취시키는 일 자체가 가야 할 일차 목적지라고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교회에서도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