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부활 제3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5. 1. 04:21

부활 제3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부활 제3주일: 다해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진실과 증거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복음은 예수님의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의 진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사도들의 이 증언은 이미 분노와 미움을 초래하였었다. 회개를 위하여 외치는 진실의 소리가 다른 이에게는 미움과 분노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21,1-19: 너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첫째 부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만나 고기잡이 기적을 이루는 장면(요한 21,1-14)과 그리스도의 모든 양 떼에 관한 수위권이 베드로에게 부여되는 장면으로 되어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라고 보고하고 있다(요한 21,1.14). 고기잡이 기적이든, 수위권 부여든 모두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고기잡이는 교회론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밤새도록 애썼으나 헛수고만 하여 포기한 제자들(3절)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써 풍성한 고기잡이를 이룬 것(7절), 153마리의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11절), 고기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11절)이다.

 

고기잡이 기적은 선교사명을 암시한다(루카 5,1-11 참조). 그 유사점을 보면, 어부들이 밤새껏 한 수고는 수포가 된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상황이 바뀐다. 그물을 가득히 채운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만이 사도적 활동의 결실을 이룬다. 오늘의 고기잡이 이야기는 그리스도 없이 하는 공동체의 노력(헛수고)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체의 노력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선교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를 때만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주님의 말씀에 따르는 순종의 자세가 필요하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 공동체와 함께하시는 현존하심으로 결실이 비롯된다. 비록 베드로가 고기잡이를 조직하는 임무가 있지만(3절) 그들의 성공은 그리스도의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6절). 이렇게 제자들처럼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복음의 둘째 부분에서는 베드로의 사목적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베드로는 이미 고기잡이를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어린양들과 양 떼들을 돌볼 직무를 맡기고(15-17절) 계시다. 그리고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으로서 교회의 구원의 모든 활동에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신다. 베드로가 갖는 권위는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권위이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파스카 선물’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봉사직은 사랑의 능력에서 비롯하여 모든 구성원이 사랑 안에 성장하게 되어있다.

 

세 번이나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세 번이나 배반했기 때문에 물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사목직과 봉사직은 더 큰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15.16.17절)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목직을 부여하시면서 그의 순교에 대해서도 예고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18절)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19절)

 

베드로의 봉사직, 사목직과 목숨을 바치기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드로는 자기의 뜻보다도 주님의 뜻을 더 중요시하였기에 완전한 봉사를 할 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베드로의 직무와 다른 모든 직무는 오직 예수께서 먼저 가신 고통과 십자가상의 죽음의 직무가 되어야 부활의 직무,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직무가 된다.

 

묵시록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상징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모든 만물이 경배를 드리는 천상 전례를 묘사하고 있다. 이 어린양은 흠숭을 받으시는 분으로 하느님과 똑같으신 분이시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묵시 5,13). 그러므로 오늘도 영원한 파스카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신분을 취하심으로써 주님이 되신다. 바로 이 길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길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과 같이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회개로 초대하며 예수님 부활의 진실을 전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 한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라” 하신다. 그 길이 영광의 길일지, 시련의 길일지 모르나 아마 쉽지 않은 길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체험하고 그분께서 함께해 주시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모욕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청하면서 우리도 진리를 증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