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듣고 있으면, 이 계명들을 지키며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면 속옷까지 내주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怨讐)란 자기나 자기 집안에 어떤 중대한 해를 끼쳐
깊은 원한이 생긴 사람을 뜻할 텐데,
이런 자를 우리가 어떻게 용서까지는 해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말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비상식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근거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지니신 자비와 사랑을 제시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곧 하느님께서 그러하시기에 그분의 자녀이기를 바라는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 자체로 정의한 요한 서간의 저자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느님께서 본디 그러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비와 사랑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그분의 속성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계명들은 사실 ‘하느님’의 행동에서
그 주체가 ‘우리’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께 원수와 다름없는 이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당신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인자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오늘 계명은 당신 자녀들이 당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호소인 셈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신앙인들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고 또 닮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를 닮으려는 자녀의 노력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겨자씨만큼 작은 우리의 사랑을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는 나무만큼 성장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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