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토요일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들 앞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십니다.
엘리야와 모세도 그분 곁에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서 그들에게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합니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베드로의
이 제안은 이스라엘의 초막절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보호 아래 광야에서 지냈던 천막생활을
기억하는 초막절은, 마지막 때가 오면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초막에서 살게 되리라는 종말론적인 기대도 반영하는 축제였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왜 초막을 짓겠다고 하였는지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눈부신 광경을 보고
지금이 바로 그 종말의 때임을 직감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수난을
강조하셨는데(마르 8,31 참조), 종말의 때에
이르기는커녕 아직 수난의 때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눈앞의 놀라운 광경에 정신이 팔려 이를 잊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한 번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음에도(마르 8,33 참조)
여전히 수난과 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지 않은 모습을 보며,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이 가르침을 멀리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영광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서 드러내신 영광은 수난의
여정 끝에 궁극적으로 맞이할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묵상하며, 그분께서 초대하신
십자가의 길이 결국 패배가 아닌 승리의 여정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정천 사도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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