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복음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두 명의 사울

수성구 2022. 1. 17. 03:15

복음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두 명의 사울

 

1사무 15,16-23; 마르 2,18-22 / 2022.1.17.; 성 안토니오; 이기우 신부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마지막 판관이었고 사울은 첫 임금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진 판관 시대 250년의 역사는 비록 불안정하기는 했으나 열두 지파가 평등하게 연합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신앙의 백성을 구현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주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지도자들의 신앙이 약화되는 바람에 왕정제도를 도입하여 정치를 안정화시키고자 하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마지막 판관이었던 사무엘은 이 지도자들에게 예언자적인 경고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은 막무가내로 요구했고 백성들도 이에 부화뇌동한 결과 사울이 첫 임금으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기보다 전리품에 눈이 어두워져서 이제는 예언자로서 경고한 사무엘의 개입으로 이스라엘의 첫 왕위를 빼앗기고 맙니다. 이러한 사울의 비극은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같은 이름을 지닌 사울이 천년 후에 극적인 회심과 장고를 거듭한 식별 과정을 통해 이방인 선교의 새 복음화 경로를 개척한 놀라운 역사로 극복됩니다. 

 

  신약의 사울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직계 사도들이 할례 받은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던 노선과 달리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눈을 돌림으로써 보편적인 복음화의 방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향에서 기성 사도들과는 다른 새로운 복음화의 방식을 개척하였으니, 그 특징을 찾아가는 선교, 노동하는 선교, 공동체를 건설하는 선교, 지속적으로 유대하는 선교, 이렇게 네 가지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그는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찾아가는 선교를 지향하고서, 소아시아 일대와 그리스 일대에 20여 년에 걸쳐서 세 차례의 선교 여행으로 복음화의 범위를 전 로마 제국 영토로 넓힌 후에 생의 마지막에는 로마로 가서 순교하였습니다. 오늘날 서방 교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사울의 공로가 있습니다. 

 

  그는 박해자의 전력을 숨기지 않았고 이방인의 복음화를 위해 부르심 받은 평신도로서의 자의식을 고수하면서도 사도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노동하며 자신의 생계비와 선교비를 충당했으며, 생활과 활동으로 이방인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평신도 사도로서 그가 지녔던 자의식과 명예감이 어찌나 뛰어났든지 이에 바탕한 그의 선교 활동은 기성 사도들도 엄두를 내지 못한 로마 복음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노동하는 선교를 기본으로 하는 사울의 선교는 선교지 이방인들에게 감화를 줄 만큼 영향력이 컸기에 그는 이 모범적 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을 본받아서 이방인들에게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공동체를 제물로 봉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세례를 주어 신자들을 늘리기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그래서 박해에도 견디어낼 수 있는 선교를 지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선교는 서로 유대하는 선교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세 차례의 선교여행에서 20여 년 동안 세운 공동체들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까지 넓게 퍼져 있었고 종국에는 로마에로 연결되기 마련이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그 많은 인명은 다 사울의 선교 협력 네트워크입니다. 신약성경에까지 포함되게 되어 그 진실성과 신앙적 정통성을 인정받은 그의 수많은 편지들은 이 유대의 결과물입니다. 

 

  이렇듯 구약의 사울은 판관들의 전통을 이어 받은 사무엘에게 경고를 받아 하느님과 엇박자를 내고 말았지만, 신약의 사울은 이 엇박자를 벌충하고도 남을 정도의 공로를 쌓아서 그 선교적 명성이 기성 사도 열둘을 능가하는 정박자를 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