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1사무 17,32-51; 마르 3,1-6 / 2022.1.19.;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미사의 독서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복음에서는 안식일 논쟁이 나옵니다. 골리앗은 필리스티아의 장수였고 필리스티아는 당시 강성하던 철기문명의 나라였으나 우상신을 숭배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이 철제 검을 들고 나온 골리앗을 대적하려 준비한 무기는 겨우 양치던 목동 시절에 익힌 돌팔매질에서 쓰던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였던 것이 이 상황의 우열을 잘 말해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집트 탈출 시에 역사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그 하느님과 동족이 맺은 시나이 계약 정신에 투철한 젊은이였습니다. 위기 때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도와주심을 철썩같이 믿었던 다윗이 겁도 없이 칼을 든 필리스티아 장수 골리앗에게 도전할 수 있었던 용기와 뒷배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다윗은 임금이었던 사울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게 되고, 결국 이 인기를 바탕으로 왕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사울 대신에 다윗을 왕위에 앉히게 된, 사무엘을 통한 하느님의 개입도 결국 다윗의 실력과 백성의 민심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필리스티아를 물리치고 국권이 튼튼하게 된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 시에 모세로부터 배운 하느님 신앙을 유다교로 굳건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유다교의 핵심은 시나이 계약이요 그 중에서도 십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그 십계명 안에서도 세 번째에 속하는 매우 중요한 계명이었지요.
오늘 복음의 상황은 이토록 중요한 계명이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은 물론 백성의 형편과도 상관없이 매우 편협하고 비인간적으로 적용되고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굳이 안식일에 회당에 데려다 놓고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사이를 비롯한 지식층 유다인들의 마음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 이상으로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모든 법은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는데, 안식일 법에 대해서는 입법취지와 상관없이 매우 형식적으로 답습되고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만나더라도 안식일에는 고쳐주지 말아야 한다고 여길 정도로 고답적인 인습이 마치 대단한 종교적 진리인 양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되어 버린 형국이었습니다.
이 고약한 대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근본 취지를 상기시키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꼼짝없이 이 대결에서 패배한 바리사이들은 그 무렵부터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는데, 하필 그 음모에서 야합한 상대는 평소에 앙숙으로 지내던 헤로데 당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야합 사실은 바리사이들의 종교적 소신이 일관성도 없고 백성에 대한 진정성도 없었음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독서에서 다윗의 하느님 신앙과 골리앗의 우상숭배 종교가 대결했다면, 복음에서는 인습적으로 고착되어 우상숭배적 혐의가 짙어진 유다교의 종교 질서와 예수님의 신앙이 대결하고 있는 형국인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회심 축일 전 9일 기도를 바치는 주간의 취지에 따라서 그의 선교 활동과 연관지어 묵상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긴장스런 국면은 여지없이 벌어졌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의 상징이었던 할례를 면제하고자 했는데, 비록 유다교인은 아니더라도 유다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기성 제자들은 할례를 고집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신앙으로 구원될 수 있는 것이므로 유다인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까지 씌울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예루살렘 사도회의까지 열려서 격론을 벌인 끝에 이방인 할례 면제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초대교회의 첫 번째 위기가 가까스로 봉합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사도 바오로는 할례를 면제받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간소화된 세례조차도 극도로 삼갔으며(1코린 1,16-17), 그보다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로 봉헌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가르쳤습니다(로마 12,1).
사도 바오로가 고군분투하며 확립해 놓은 예수님의 계시, 즉 종교 질서는 신앙 진리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진리조차도 교회의 역사와 현실에서는 종종 철제 검을 든 골리앗과 작은 돌맹이를 쥔 다윗의 싸움처럼 불리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세례 받은 신자의 수로 표시되는 교세가 중요한 지표가 아니며 그 중에서 주일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하는 열성 신자의 숫자 역시도 중요한 참고 지표가 되지 못합니다. 세례나 영성체와 상관없이 실제로 실천되고 있는 삶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지요. 세례와 영성체와 같은 성사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생활을 하라고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진리는, 안식일로 대표되는 모든 종교 질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신앙 진리에 종속되는 것이며 그 최고 기준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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