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다윗 이야기

수성구 2022. 1. 18. 01:57

다윗 이야기

 

1사무 16,1-13; 마르 2,23-28 / 2022.1.18.;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모두 다윗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지만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에서는 사실상 이스라엘 왕국을 대표하는 임금이요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던 임금이었으며 하느님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던 임금이었습니다. 벤야민 지파 출신의 사울이 왕위를 자기 아들에게 계승시키지 못하고 유다 지파 출신의 다윗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일찍이 야곱이 열두 아들을 앞에 두고 장차의 운명을 예언했던 바가 실현되었습니다(창세 49,8). 

 

  성경에서 다윗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가 이룩한 명성에 그치지 않고, 메시아 대망 사상이 신앙급으로 널리 퍼진 가운데 그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출현하시리라는 메시아 도래 예언의 정초(定礎)가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즉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즉 왕손 가운데에서 나타나리라는 예언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마태오가 자신의 복음서를 편찬하면서 제일 첫 머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소개했는데, 그 제목이 이러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 아브라함은 다윗에게 까마득한 조상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떠받들리는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보다 다윗의 이름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다윗의 후손 즉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를 보내시리라는 약속을 실현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안식일 계명의 제 자리를 찾아주려고 예수님께서 다윗 일행이 겪은 고사(古事)를 인용하시기도 하셨지만(마르 2,25-26), 그분을 만나러 온 사람들도 그분을 부를 때 “다윗의 자손이시여!”(마르 10,47; 11,10; 12,36) 하고 예사로 일컬었으며 이는 그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여기고 있었다는 증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위대한 정치가로 기대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보다도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이 훨씬 더 위에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 중에서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다윗 반열의 현실적 통치자로서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일찍부터 야곱과 모세와 다윗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께서 맺으신 계약에 충실하심을 보여주시는 증표로서, 결국 이스라엘이 메시아적 백성이 되도록 변화시키시려던 섭리의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위로는 지도자들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도 못했고, 그분이 선포하신 복음에 따라 회개하지도 않았으며, 끝내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기 때문에 다윗과 그 왕조에 약속하신 하느님의 계약은 새 이스라엘이자 참이스라엘로 부르심 받은 교회에 넘어가게 되었고, 그로부터 2천 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거짓 목자로 지탄받는 지배층이 형성해 온 흐름(왕국의 성립과 분열, 멸망과 유배)과 힘이 없고 가난했으나 신심은 돈독했던 아나빔들이 형성해 온 흐름(메시아 대망 사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및 초대교회의 형성)이 있는데, 이 두 가지 흐름에서 다윗은 모두에게 자신들의 대명사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공화국과 미국 등지에서 유다교를 신봉하는 유다인들은 다윗을 메시아로 여기며, 다윗이 이룩한 정치적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바리사이즘을 고수하고 있는 현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분은 다윗처럼 현실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으셨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구약시대 아나빔들의 맥을 잇고 있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윗의 이름은 여전히 희망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시편 같은 아나빔들의 성서의 지은이는 다윗이라고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활동하던 3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2천 년 전에 또 지금에 와서 유다인들이 다윗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하느님께서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윗을 대하셨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아나빔들에게 한없이 그리고 끝까지 충실하셨던 하느님의 약속을 상기하며 다윗의 이름을 부릅니다. 특히 성무일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