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연중 제2주일]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수성구 2022. 1. 16. 04:32

[연중 제2주일]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사 62,1-5; 1코린 12,4-11; 요한 2,1-11

2022.1.16.; 연중 제2주일; 이기우 신부

 

1. 새 창조의 원동력, 사랑과 믿음

지난 주님 세례 축일의 말씀에서 우리가 선포받은 메시지는 바야흐로 새로운 세상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다는 어마어마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새 창조의 주역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요한으로부터 물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이 순간에 새로운 창조에 필요한 징표를 세 가지나 받으셨습니다. 하늘이 열렸고, 성령께서 내려오셨으며,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고 확증해 주시는 음성을 들으신 것입니다. 인류가 창조된 이래 그 당시까지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을, 그래서 오직 예수님께만 주어진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하늘의 징표였습니다. 

그리하여 세례 축일에 이어진 지난 연중 제1주간 동안에 우리는 마르코가 보도하는 예수님 공생활의 대표적인 일상을 들었는데, 이것이 새로이 창조될 세상이 질서를 잡아나가는 과정의 표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선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선포하시며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그 하느님의 ‘때’를 알려주셨고 믿음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마귀들을 쫓아내셨으며,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는데, 그 중에는 나병 환자와 중풍 병자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하시려는 새로운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현실이어서 마귀도 없어야 하고 질병도 사라지리라는 것과, 이 새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창조의 주역이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또 하나의 공현 사건, 포도주의 기적

오늘 연중 제2주일에 우리가 들은 복음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입니다. 나자렛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나 마을에서 있었던 혼인 잔치에 초대받으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께 함께 가자고 제안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마침 부르신 제자들을 대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포도주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혼주 모르게 아들 예수님께로 다가오셔서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넌지시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대동하신 네 명의 장정이 너무 마셔대는 바람에 포도주가 떨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모자 간에 약간의 밀당이 벌어지더니 예수님께서 사양을 하시는 데도 성모 마리아께서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시자, 하는 수 없이 예수님께서도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시며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 기적이 일어났는데, 놀라운 것은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이 기적을 목격한 제자들이 비로소 그분의 신적 능력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로써 난처해진 혼주를 센스있게 도와주시려던 성모님의 요청과 모자 간의 ‘밀당’을 거쳐서, 어머니께로부터 강력한 로비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발을 빼시려다가 본의 아니게 이 포도주 공현 사건을 일으키신 숨은 의도가 밝혀졌으니, 그것은 제자들이 당신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3. 이사야의 꿈, 메시아의 도래와 그 백성의 출현

이렇듯 제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 믿음을 간직하게 된 현실, 즉 메시아와 그를 믿는 백성의 만남을 이사야는 진작부터 꿈꾸어 왔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것을 예고하며 아나빔들에게 그분을 기다리도록 희망을 주면서도 메시아 백성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채근했던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 백성으로 변화될 그러한 미래의 현실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이렇게 대단히 서정적인 필체로 묘사하며 전해준 바 있었습니다: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이사62,1). 

그러면서 또한 이사야는 하느님의 간절한 심정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새롭게 변화될  영광에 대해서도, 자기가 보게 된 비밀스런 미래 사정까지 알려주며 격려하였습니다: “너는 주님께서 지어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이사 62,2). 장차 출현해야 할 메시아 백성이 맞이할 영광스런 미래의 모습은 하느님께 크나큰 기쁨이 되리라는 꿈을 이사야는 아주 감성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이사 62,5). 이러고 보면, 새 창조의 원동력인 하느님의 사랑과 백성의 믿음을 이사야는 진작부터 준비시킨 셈이었습니다. 

 

4. 교회의 현실, 바오로의 증언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은 훗날 그와 꼭같은 이상을 간직한 바오로에게서 사도적 증언의 형태로 메아리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즉, 첫 제자로 부르신 네 제자로부터 믿음을 얻으신 예수님께서는 바오로에게는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부르시어 믿음을 갖추게 하셨는데 로마 제국 안에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자존심도 무척이나 강했으며 체력도 그에 못지않던 그에게는 그에게 꼭 들어맞는 맞춤형 방식으로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삼으시어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서 로마 제국의 전체 강역에로 믿음이 퍼져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는 이사야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자신이 로마 제국 내에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등지를 선교하러 다니며 목격한 바 있는 새로운 창조의 현실, 즉 교회라는 메시아 백성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새 창조의 생생한 신비를 공동선과 은사로 간추려 매우 체계적인 형태로 증언하였습니다. 이 공동선과 은사들은 창조의 에너지이며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힘입니다. 바오로가 철학적으로 간추린 사도적 증언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한 몸이 되셔서 교회라는 메시아 백성을 움직이십니다. 그리하여 먼저, 종종 사회악에 가려져 있지만 대개는 사회악 때문에 드러나기 마련인 공동선의 실체를 알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 이를 위하여 각자가 자기에 알맞은 직분에 따라서 받은 은사를 발휘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공동선을 식별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은사를 발휘하게 하시는 두 단계로 새로이 창조되는 하느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공동의 선을 위해 주어진 은사들은 매우 다양해서, 지혜나 지식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병을 고치거나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며, 예언을 선포하거나 그 예언을 해석하기도 하는 등 사람들이 공동체로 모이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은사 안에서도 공동선에로 향하는 일치가 교회 안에서 이룩되는 새 창조의 질서요, 메시아 백성의 현실입니다. 

 

5. 공동체 운동을 위한 사도직, 믿음의 공현

따라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심으로써 당신의 신적 능력을 드러내시고 하느님 아들로서의 정체를 나타내어 주신 것처럼, 메시아 백성은 공동선을 위한 은사를 발휘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각자 세상에 공현시켜야 합니다. 각자가 사는 자리와 일하는 자리에서, 가족과 지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주어진 인간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은사를 드러내되 공동선을 지향하여 발휘하게 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창조하십니다. 이 모든 노력이 공동체를 위한 사도직이요, 이로써 우리의 믿음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드러납니다. 

 

6. 믿음은 선물이며, 은총과 자유의 배합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이 기적이고 이로 인해 제자들이 믿음을 얻게 된 것이 또한 더 큰 기적이듯이, 우리가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 또한 엄연한 기적입니다. 그냥 신기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라마지 않으시는 소중한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때는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역사적 위력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믿게 되는 변화 역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이 복음을 믿으라고 요청하셨는데, 제자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에게 믿음이 없으면 대단히 실망하셨고 어쩌다 간혹 믿음이 돈독한 이들을 만나시면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예수님께서도 그토록 바라시면서도 강요하실 수는 없는 것이었고, 오직 우리의 자유가 선택해야만 간직할 수 있는 특별한 태도라는 사실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하느님께서 먼저 무상으로 베푸시는 사랑을 선물로 받고 이를 깨달은 우리가 선택함으로써 받는 은총이라는 사실은 더욱 더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우리의 인간적 의지대로 착하게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자유를 선용하게 이끄시는 하느님의 주도권까지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심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키심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활동을 변화시키심을 또한 받아들이는 것을 당연히 의미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믿음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시는 은총과 우리가 자유로이 선을 향해 결단하는 자유의 배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사에서 영성체를 하며 축성된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제의 말에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 초대하신 인생이라는 잔치에서 우리는 포도주로 변화되어야 할 물입니다. 

 

7. 끓는 물의 비유

우리가 믿게 됨으로써 은총과 자유의 배합으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이러한 이치를 끓는 물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상온에서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습니다. 열을 가해서 물을 99도까지 온도를 높여도 뜨거워지기는 하지만 끓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1도를 더 가열해야 물이 끓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99도로 가열되고 있는 상수(常數)입니다. 마지막 1도의 가열 노력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는 변수(變數)입니다. 물이 끓는 온도 중에 99%는 하느님의 몫이지만, 이마저도 우리가 노력해서 가열해야 할 1%의 열이 없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노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8. 인생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와 같다

카나의 혼인 잔치는 세상과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포도주는 준비되어 있지만 언제라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면 비상사태입니다. 이때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센스있게 아들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고 전구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성모송을 바치면서,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이유요 근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게 되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메시아께서 우리의 마음도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이사야가 내다본 대로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펼쳐질 영광스런 미래를 함께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우리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99도로 물을 가열하는 열정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믿음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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