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나병 환자의 치유

수성구 2022. 1. 13. 05:42

나병 환자의 치유

 

1사무 4,1-11; 마르 1,40-45 / 2022.1.13.;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나병을 악성 피부병으로 불렀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죽음의 맏자식이 사지를 갉아먹는”(욥 18,13)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정한 자’로 여겨져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하고 낫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마을로 복귀할 수 없는 저주를 받았습니다(레위 13,45-46). 당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회적 약자였던 셈입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대개는 가족들이 음식을 조달해 주었겠지만 어쩌다 그것도 어려워져서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에 들어와야 할 때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멀리 떨어지시오!” 하고 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 수치심이야 이루 말할 나위가 없었을 테지요. 예수님 당시에 어떤 나병 환자가 그분에 관한 소문을 듣고 나서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낫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무릎을 꿇고 치유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손꼽히던 이 나병 환자 치유 사도직에 소명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적인 치유 능력이야 없었어도 가엾은 마음만은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던 용감한 사도들이었습니다. 

 

  가장 선구자는 프란치스코였는데, 그도 사실은 클라라를 따라한 것이었습니다. 12세기 이태리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는 아씨시 근처에 있던 나병 환자 마을에 음식을 날라다주는 일을 하며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보이신 가엾은 마음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은 사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병 환자를 돌보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람은 20세기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입니다. 그는 미국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에다 나병 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그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나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받고자 섬을 떠나지 않고 함께 나병 환자로 살다가 생을 마치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다미안으로 불리던 사람은 이경재 알렉산델 신부입니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28년 동안 경기도 의왕에 라자로 마을에 들어가 28년 동안 나병 환자들을 전문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도움을 받은 나병 환자가 무려 52만여 명이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채로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던 1960년대 중반에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인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도 그리스도 왕 시녀회 소속 평신도 선교사로서 한국의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 들어가 40여 년간 월급도 받지 않고 도왔습니다. 

 

  생전에 이경재 신부는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나병 환자들의 심정을 대변한 바 있습니다: “나환자들이 제일 먼저 갈구하는 것은 몸을 낫게 해주는 약입니다. 환부가 좀 치료되면 다음으로는 음식과 옷, 편안한 잠자리를 원하지요. 세 번째로는 돈을 갖고 싶어 해요.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마지막으로 갈망하는 게 형제자매와 부부의 '정(情)' 입니다. 앞의 세 가지는 물질적 지원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네 번째 문제는 돈으론 풀 수 없는 사랑과 인정의 문제로 나환자 사목의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중앙일보, 199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