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

수성구 2022. 1. 15. 01:41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


1사무 9,1-10,1; 마르 2,13-17 / 2022.1.15.;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마르코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때가 차서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신 활동은 첫째가 제자들을 부르신 일이고, 둘째가 마귀를 쫓아내신 일이며, 셋째가 아픈 이들을 치유해 주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마치 부록처럼 세리였던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선 세 가지의 표준적이고 대표적인 복음선포 활동에 대해서는 방관하던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돌발 행동은 직전에 중풍 병자를 고쳐주시던 예수님께서 그에게 용서를 베푸신 행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앞선 세 가지 활동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적 능력을 드러내신 것이지만,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삼는 일이나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하는 일은 바리사이들의 관행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은 이 두 가지 행동에서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선포하려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제 색깔을 드러납니다.
세리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공적으로 기피하던 직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세력에 빌붙어 백성을 착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점을 모르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관점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회개한다면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레위라고 불리던 이 세리는 마태오였습니다. 세리로서 발휘되던 세속적 영민함은 그가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공생활을 따라 다니는 과정에서도 복음적 영민함으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 결과가 마태오 복음서입니다. 이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할 수 있는 대로 모아서 모두 다섯 개의 주요 설교를 중심으로 편집해 놓았습니다. 산상설교, 파견설교, 비유설교, 공동체설교, 종말설교가 그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세리 출신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선택은 넉넉히 그 정당성이 입증되고도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며 이를 비판하는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에게 스스로 변호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이 말씀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문장이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쓰여졌음을 눈치채야 합니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알고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기에는, 열 가지에 불과했던 계명을 6백 가지도 넘게 늘려놓아서 백성들이 알기도 어렵고 지키기는 더 어렵게 해 놓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보셨습니다. 게다가 계명의 입법취지인 계약 정신에는 불충실한 채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고자 하고 사회적 위신과 체면을 앞세우면서 가난한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려든다고 보셨기 때문에 그들을 주저 없이 ‘위선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자칭 의인들을 위해서는 당신이 해 줄 일도 없고 편을 들어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죄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겸손하게 하느님 앞으로 나아오는 이들을 부르시겠다는 당신의 선택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이라는 가톨릭 사회교리 명제의 복음적 근거입니다. 이 명제는 부유한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 앞에는 그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성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