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용서
1사무 8,4-22; 마르 2,1-12 / 2022.1.14.;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 마귀도 쫓아내셨다는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중풍 병자도 있었습니다. 격리되어 살던 나병 환자는 용기를 내기라도 하면 되었지만, 사지가 마비된 중풍 병자는 아무리 용기를 내더라도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중풍은 거동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사물을 보는 데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지기도 하는 병입니다. 이는 사지근육과 언어 중추, 시각 중추 등을 관장하는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뇌세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생기는 뇌졸증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 병자는 이웃에 사는 네 사람이 드는 들것에 실려,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참으로 희한하고 눈물겨운 풍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중풍 때문에 겪어야 했던 신체적 고통 못지않게, 그가 중풍에 걸리기까지 겪어야 했던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는 물론, 사람들 사이에도 의사 소통의 통로가 꽉 막혀 있었습니다. 제사는 사두가이들이 독점하며 비싼 성전세와 제물을 요구했기 때문이고, 세상에는 율법과 재산에 의한 기준으로 정해 놓은 의인과 죄인이 분리되어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워낙 복잡해서 보통 사람은 다 알 수도 없어서 일일이 바리사이들에게 물어서 살아가야 했고, 재산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증표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죄인으로 취급받고 재산도 없어서 가난한 이들은 이중으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낙인을 찍힌 채로 짓눌려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렇듯 잔뜩 움추려든 상태에서 면역력이 증진될 리 만무하고, 그러다가 자칫하면 가장 약한 신체 부위로 질병이 찾아오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 병자의 신체적 원인을 해결하기 전에 당사자도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원인부터 해결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하고 마비된 사지도 풀어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치유 기적의 권능을 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한편 중풍 병자를 고쳐내신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경탄하였지만, 군중 속에 끼어 있던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죄의 용서를 한낱 사람인 주제에 감행하는 모습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신성모독죄의 혐의를 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혐의가 성전모독 혐의와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게 만드는 빌미가 되지요.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중풍 병자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얻었고, 이 광경을 지켜본 군중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해 확신이 굳어지게 되었으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마르 3,6), 예수님으로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선포함으로써 인습적으로 너무나 멀게 느끼던 하느님의 본 모습을 알리는 기회로 삼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죄인들을 용서하기로 하셨다는 복음선포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질병의 치유 기적도 용서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중풍을 비롯한 모든 질병은 신체적인 고통을 가져다주는 한편, 정신적으로 위축시키고 사회적으로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당사자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용서의 본질은 죄인을 끌어안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영역 안에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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