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예수

수성구 2022. 1. 11. 04:14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예수 

 

1사무 1,9-20; 마르 1,21-28 / 2022.1.11.;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려 시작하신 공생활에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신 일과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주신 일이었습니다. 마르코가 연이어서 보도한 이 부르심과 구마와 치유 행위(마르 1,16-34)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는 과정의 표준이며,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에게도 치유와 구마가 뗄 수 없는 한 묶음으로 수행해야 할 활동임을 보여줍니다. 더러운 영은 한처음에서부터 하느님을 대적하려던 창조의 적수였고,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던 주요 세력들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도 죄악에 광범위하게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복음선포였습니다. 오늘은 구마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구마 행위에는 먼저 영을 식별하는 일과 그 다음 식별된 악령을 쫓아내는 일, 이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구마 행위는 우리 힘으로 하기 어렵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해 주셔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해 주시리라는 믿음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실질적으로 영을 식별하는 일이 더 절박한 과제입니다. 

 

  개별 인간에게나, 사회 구조에도 더러운 영은 맹렬히 활약하고 있습니다. 개인들의 가치관과 사람들의 집단풍조는 물론이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 즉, 사회의 여론을 전해주어야 할 언론이나 학문으로 표현되는 사상에도 더러운 영은 암약합니다. 오늘 복음의 본문에도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다고만 나오지, 어떤 특징으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식별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을 신앙 진리에 입각하여 풀이한 교리와 이에 준하는 교도권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흔히 교리는 재미없다느니, 교황청 문헌은 읽기가 어렵다고들 말하는데, 이러한 평판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교리나 교도권 가르침은 재미나 편이성으로 평가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이 성령의 이끄심인지 악령의 준동인지를 식별하기 위한 진리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는 오늘 복음의 상황에서 보듯이, 하느님의 이름이나 그분의 가치들이 드러나는 현장에서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정체를 폭로하고 마는 존재가 악령입니다. 무신론적인 학문과 사상, 언론 동향이나 사람들의 풍조들이 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