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하느님 때문에

수성구 2021. 12. 31. 04:03

하느님 때문에

영성 생활의 어느 단계에 들어서면, 

육체의 정욕과 

무의식의 정화의 단계를 거치고,

그 다음 자존심과 혈기(자기식의 의)를

 다루는 과정을 밟게 된다.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쳐놓은 올무

(올가미)속에서, 영적인 구조악의 수렁 

속에서 억울함과 모함과 모욕을 당한다. 

 

욥의 탄원이 모조리 나의 것이 되고,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하느님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하느님의 

이름 앞에서, 욥의 부인의 말처럼, 

하느님을 욕하고 죽어 버리고 싶을 때도

 인간적으로 생긴다.

 

이때 오는 깨달음이 한 가지 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받아들인다는 게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면, 무슨 뜻이 있을텐데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보다 더 큰 선을 위하고, 보다 더 

큰 악을 예방하기 위해서"

전능하시고 전선하신 하느님께서 

악을 허락하신다고 했는데.

 

이 상황까지 오면, 

내 성소와 사제직과 구원을 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대전에 

충성할거냐?  떠날거냐? 

하는 갈등과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하느님께서는 내 자신의 실존이

 무너지는 극한적 한계 상황 속에서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 같다.

 

부모가 도둑이고, 사기꾼이고, 

거짓말장이라도 내 부모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듯이, 神의 부재(否在)를 체험하고, 

이성적으로 못 알아들을 일이 생기고,

神이 나의 적대자로 둔갑해도,

내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시고

 목적이신 하느님, 내  영혼 육신의

 참 부모이신 하느님을 버릴 수 없다.

 

하느님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들 속에서, 억울한 고통을 가하도록

허락된 자들을 용서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을 욕하면, 이들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성경의 <나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하느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겪는 인간적으로

 억울한 고통과 누명>이 해결되고, 

이 성경 말씀의 뜻을 알아 듣는다.

 

하느님 때문에 저들을 용서한다.

하느님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세력들을 용서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모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하느님 때문에 참는거다. 

하느님 때문에 참자~

내가 언제 하느님 때문에 억울한 

고통을 받아 보았나?

내가 언제 하느님 때문에 이토록 마음 

아파해 본 적이 얼마나 되나?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갚아 주시겠지~

이 땅에서나  내세에서~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이러한 억울한

 고통의 과정을 통해, 당신께 대한 

충성과 신뢰와 사랑을 시험하신다.

 

예수님의 삶이 그렇듯이 

묵시록에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살해된 고양)이 천국의 등불이란다.

 

이것을 통해 영적인 힘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은사를 받는 사람들, 특히 

위탁받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예언의 은사를 받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금같은 말씀의 무게와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리고 겸손하게 자신의 성소를 

잘 끝내도록 하기 위해,

먼저 죽도록 억울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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